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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휴식, 미식, 달콤함

[와이탄] 상해의 털게철을 맞아 코스요리를 즐기러 찾아간 성륭행해왕부(成隆行蟹王府, chen long 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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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독감이 혹독하게 지나간다. 나도 그 희생양이 되었고, 퉁퉁 부어오른 귓속과 꽉 막혀버린 코, 울리는 머리, 아픈 목울대를 부여잡고 상하이 여행 포스팅 하긔.. 오늘 해방촌 꼼모아에서 혼자 와인 한 병에 메추리요리 즐겨볼까했는데 냄새를 맡을 수 없으니 부득이하게 예약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고, 계속 기침을 하니 영화관을 가도 민폐에 귓 속 염증 때문에 와인도 불가. 이를 갈면서 퇴근 전 쓰는 포스팅~

중국은 꽤 저명하고 희귀한 식재료를 고급요리로 만드는 국가로 유명한데, 그 중 가장 무난하고 고급지게 즐길 수 있는게 바로 털게(Hairy Crab, 따자시에, 다자셰)라고 한다. 가을부터 그 철을 맞아 가을에 상해에 가면 꼭 털게를 먹으라는 의견들이 많아 프로의견수렴러인 나는 망설임없이 여행 둘째날 저녁, 낮잠을 마친 뒤 와이탄으로 향했다.

예원에서 와이탄까지는 도보로 20분 안쪽으로 걸리는 거리라 위치가 참 좋다.

실컷 자다가 문득 일어나보니 어느덧 해는 완연하게 져있었고,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며 거리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비가 세차게 오는게 아니라 대충 우산 하나 들고 가방 매고 나오면 되는 문제라 불만은 없긔

​홍콩자본으로 운영되는 털게 식당으로 유명하다는 성륭행해왕부에 도착하니 이미 만석이었다.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각각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합석하는 구조였는데, 아마도 이른 시간에 가면 한산해서 테이블을 나누어 쓸 일은 없어보였다. 뭐 이 것이 중국문화라면 따라야지 싶은 마음으로 5번 자리를 부여받고 착석했다.

메뉴판은 찍지 않았는데 그냥 무난하게 588위안짜리 코스를 주문. 한화로 11만원 정도 하는 금액인데 오백팔십팔위안 이러니까 금전 감각 상실하고 막 시킴ㅋㅋ 

​첫번째 전채로 설채(雪菜)라는 야채에 깨 드레싱을 얹은 요리와 편육으로 만든 젤리, 그리고 게살 젤리가 나왔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내가 다시 이 식당에 온다면 아마 이 설채를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 눈 설자를 사용한 이름처럼 마치 꽁꽁 얼어붙은 식감을 내는데 아주아주 깃털처럼 가볍고 바삭하게 입 안에서 바스라진다. 일식 튀김보다 더 얇디 얇고 하늘하늘한 바삭함을 가진 야채가 존재한다는게 조금 충격이었는데..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드레싱이 땅콩 내지는 참깨드레싱 같이 고소한 맛의 소스를 선호하는 편인데, 이 멋진 설채에 그런 진득한 소스를 묻혀 내어왔으니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입 안에서 목화솜처럼 가볍게 바삭거리던 이 야채를 평생 잊을 일은 없을 듯.

​편육젤리인데 돼지의 콜라겐이 여기서 젤리처럼 굳어져 매력적인 식감으로 둔갑했다.

차가운 편육맛ㅎㅎ

​게의 내장을 젤라틴으로 굳힌 요리인데 그냥 게 내장향 나는 젤리다. 젤로라는 텍스처가 생각해보면 식사로 나쁘진 않다. 예전에는 왜 젤리를 식사에 포함시키지?라고 생각했는데 깊은 맛을 담아내기에 영 어색한 플랫폼은 아닌 것 같기도하고. 그래도 가급적이면 젤리보다는 그 식재료만의 텍스쳐를 좀 살려주는 편이 아직은 좋다. 젤리는 식감이라는게 딱 1개니까. 향도 갇힌 느낌이고 혀 끝에서 느껴지는 맛만 존재하는 듯한..

​뜨거운 게살&샥스핀 스프가 나왔다. 냄새부터 진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나저나.. 세계에서 유명한 식재료가 으레 그렇듯, 샥스핀 역시 동물 학대에서 기인된 식재료로써 마냥 즐겁게 먹긴 힘든 것 같다. 내가 비건이나 육류섭취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직 아니지만, 주변에 있는 채식주의자분들의 영향으로 나 역시 도축된 육류나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추출한 해산물을 먹기 전에 꺼려지는건 사실이다. 함께 살아가는 마당에 좀 더 고통스럽지 않게 죽음을 맞게 해주는게 예의라고 생각해서. 그런식의 "그나마 인간중심으로 정상적인" 육류 섭취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쯤이면 여성혐오도 사라지겠지. 암튼 한참 멀었다. 

​중간 중간 푹 익은 게알의 단단함이 느껴지며, 풀을 먹는 듯한 점성이 있다. 야들야들 찢어지는 게살 역시 한 웅큼 들어있어 게요리라는 정체성과 본분을 잊지 않았으며 한 입 떠먹으면 입 안에 뜨거움이 확 느껴지는 동시에 산미와 짠맛이 게의 향과 함께 밀려온다.

중국식 수프와 볶음밥만은 어떻게.. 깔 방도가 없다니깐. 뷔페에서 먹는 싸구려 게살수프마저 맛있게 먹는 입맛을 가진 나인데, 현지에서 먹는 이 "진짜", 그리고 "털게"라는 키워드로 만들어낸 수프는 정말이지 최고였다. 만약 추운 겨울날 싸늘한 상해 대도시 속에서 이 것을 먹는다면 그 해 겨울은 축복 받은거네.

콜라 한 캔 주문해보고.. 얼만지는 모르겠고 그냥 크얼라 달라고 함.

​따로 반찬도 주는데 먹어보진 않았다. 나오는 접시 수가 많고 공간이 부족해서 정신 없어서 반찬은 집을 생각조차 못한..

브로콜리와 ​파인애플로 장식한 칠리새우. 익숙한 비주얼이다. 대가리는 따로 튀겨서 놓아주는데 껍질이 단단해서 씹어먹지는 않았다.

​기교 없이 잘 빠진 우리가 아는 익숙한 칠리소스의 맛과 탱탱하고 속이 꽉 찬 새우에서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게 아주 맛있었다. 칠리가 지나치게 무겁거나 단맛에 치우치지 않았고, 뽀독뽀독한 새우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다소 따분할 수 있는 메뉴지만 잘 풀어내었다.

​만터우를 하나 주는데 페스츄리처럼 겹겹이 부서져내리는 얇은 만두피가 특징이다. 고기와 야채를 반죽해서 넣은 소가 들어있는데 다소 텁텁하고 부담스러운 식감과 약간 차가운 맛에 한 입 먹고 그대로 물렸지만 지금 와서는 다시 먹어보고 싶다. 슬슬 배가 불러와서 지레짐작하고 손을 놓아버린게 아쉽다. 

​그 다음으로는 크래커에 게 내장을 크림처럼 차갑게 굳혀서 게 모양으로 올려놓은 다소 귀여운 요리가 나왔다. 튀긴 쌀알과 고수를 흩뿌려놓은게 이 집은 플레이팅도 은근 신경을 쓴다는 증거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멋을 많이 낸 요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분자요리를 안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맥락. 무엇인지도 모를 재료로 보이는 요리라 그닥 구미가 당기지 않는 기분으로 한 입 먹었는데, 100%의 순도처럼 느껴지는 진하고 진한 게의 내장 맛이 차갑고 부드럽게 입 안에서 풀어지면서 입천장에 쩍쩍 달라붙는 진득함을 보여주면서 고소하고 바삭한 크래커와 시너지를 내는게 인상 깊었다. 내장류를 워낙 좋아하는 입장에서 환호할만한 맛이었다. 

​자그마한 남비에 뭔가가 담겨져서 왔다..

개인적으로 냄비보다는 남비라고 표기하는걸 좋아한다. 아주 구식 표현이지만 어릴적 읽던 세계동화책에 세리프 서체로 등장인물들이 먹던 요리 묘사가 등장하곤 했는데 꼭 '남비'라고 써져있었다. 나는 그렇게 책 속에서 음식에 대해 관심을 가진 케이스라 그 때 나의 흥미를 돋구었던 단어들을 나름 간직하고 싶다. 남비, 닭튀김, 셰리.. 

​발라낸 게살과 게 내장과 게 알을 잔뜩 뒤섞어 뜨겁게 낸 요리.

뚜껑을 열자마자 진득한 게의 향기가 코를 찔러왔다. 젓가락으로 한 점 집어 먹으니 이보다 더 '게'스러운 맛이 있을 수가 없다. 작은 남비지만 그 속을 꽉 채워놓았기 때문에 양도 무시 못하는데 이렇게나 게를 잔뜩.. 털게 나오기도 전에.. 조금 놀라웠다. 

한국에서 먹던 꽃게보다 몇배로 진한 맛이니 따지고 보면 내 취향이 맞긴한데 솔직히 아까의 게수프부터 게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강해 이미 게에 물린터라 좀 버겁게 느껴졌던 것이 맞다. 게에 환장하는 체질도 아니고 굳이 먹자면 게살보다 게 내장을 선호하는 정도의 라이트한 팬이라 끈임없이 쏟아지는 게들의 향연이 당황스러웠다. 맛은 확실히 죽임. 눅진하고 고소한 내장에 버무려진 게살이라니! 

​힘겹게 그 뜨거운 게살들을 퍼먹고 난 뒤 작은 찹쌀 경단을 발견했다. 조금 뜯어먹어보니 속에는 오렌지 크림이 한가득 차갑게 채워져 있었다. 서양 코스요리에서 메인요리 전 쓰이는 셔벗의 용도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산도보다 단맛 위주라 위장을 더 헤비하게 만드는.. 

그런데 별개로 정말 입자가 곱고 달콤하고 잘 만들어진 오렌지크림을 먹는 느낌이라 경단은 그대로 두고 속의 과일크림만 떠서 먹었다. 메인요리 전 입가심 용도보단 식사 후 디저트로 더 잘 맞을 법한 밸런스.

​대망의 털게가 나오고..

털게는 먹어본 사람이라면 3번 놀란다고 한다. 첫째로 너무 작아서, 둘째 너무 비싸서, 셋째 너무 맛있어서. 결론으로 말하자면 난 딱 한 번 놀랐다. 너무 작아서.. 진짜진짜 작다. 저 몸통이 아이폰6의 딱 절반크기다. 가격이야 뭐 맛있으면 비싼게 당연하니 나머지 조건은 그닥 놀랍진 않다.

​노란 꽃잎으로 나름 장식까지 해놓았는데 썩 잘 어울린다. 짙은 주홍빛으로 잘 익은 털게에겐 이름다운 털들이 빽빽하게 붙어있다. 사진 좀 찍고 직원분에게 손짓 발짓으로 해체 좀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얼마후 나의 귀엽던 털게는 이렇게 안타깝게 해부된 모습으로 돌아왔다...ㅠㅠ

​몸통에 있는 살은 따로 발라서 놓아주는데 완전 쥐똥만한..  

아까 먹은 그 게살냄비와 비교하면 먼지수준이라 별 생각없이 대충 집어 먹었다. 맛은 음 게 맛이군 ㅎ

​게살 자체는 별 특징 없이 심히 무난한 맛이었으나 털게의 값어치는 바로 이 내장쪽에서 완연히 드러난다.

반숙으로 탱글하게 익힌 계란노른자의 몇곱절 진한 맛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입 안에 넣어보는 순간 혀가 1톤의 쇠구슬을 매단 마냥 축 무거워지는게 정말 제대로 된 '고소함'이라고 부르고 싶다. 좋은 내장요리에는 비릿함이란 있어선 안된다. 해산물의 비린맛을 바다맛이라고 부르며 좋아하는 나지만, 내장에서는 오롯이 고소함만이 느껴지는 것을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성륭행해왕부의 털게는 내장으로써 존재가 증명되었다고 생각이 되었다. 아주 신선하고 녹진하면서 사람 홀리는 맛. 양이 적어서 좀 그렇긴한데 훌륭함을 느끼기엔 뭐 충분하다.

​다리는 이렇게 잘라주셔서 살만 쏙쏙 빼먹으면 되는데 살이 그닥 많지는 않다. 솔직히 이 가게는 털게 먹으러 온다기보단 다른 요리들이 더 임팩트 있는 것 같다... 

​게를 먹고 나니 마무리 단계가 찾아오고, 꽤 커다란 샤오룽바오 하나가 작은 찜통에 담겨 나왔다. 위에 올려진 짙은 주홍빛의 정체는 아마 게알이 아닐까 추정 중.

​생강채 조금 들어간 간장도 세팅해주고

​이 소롱포 하나로 상해 모든 딤섬집 쌍싸다구 때릴 맛...ㅠㅠ 박수쳐주고 싶었다. 

​게 집게살과 배추를 넣어 끓인 맑은 수프의 등장.

어릴적 어머니가 옥수수 갓 쪄주면 나던 짙은 냄새가 났다. 푹 익은 배추에서 우러나오는 이 시원한 맛. 향수에 젖어 시원하게 입을 마무리 했다.

​식사로는 탄탄면과 게알비빔밥 중 선택할 수 있었는데 면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게알비빔밥을 선택함

​다양한 재료들이 고명으로 나오는데 냄새 한 번 맡아보고 조용히 옆에 치웠다. 나로써는 용납할 수 없는 낯선 향이 진동하니까 뭔지도 모르지만 일단 패스.

​게 내장 안녕? 우리 또 보네?? 희희

​한국이라면 게딱지! 비벼서 게 딱지에 넣어 먹으니 게먹는 기분 나고 좋다. 맛은 좋은데 고명을 안 넣어서 그런지 간이 좀 안 맞는 것 같기도. 밥의 찰기는 고슬고슬한게 흠 잡을 곳 없다. 다음에 여기 오면 탄탄멘도 먹어보고 싶은게 솔찍헌 여우의 심정

​차가운 과일차가 나오는데 너~무 달아서 패스. 덜 달았더라면 완벽했을텐데 이런 마무리 아쉽고요

홍콩스러우면서 대륙의 느낌이 살아있는 인테리어. 영화에 나올법하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입구엔 나가는 손님들과 들어오는 손님들로 바글바글한게 현지인들의 핫플레이스로 취급받는 느낌을 물씬 받았다.

이렇게 잘 먹고 11만원이면 돈 쓸만하내... 가치있내...! 좀 정신없는 분위기와 합석시스템이 아쉽지만 중국가면 중국식을 따라야지 어쩔 수 없다. 코스의 구성이 다 잘 어우러지고 메뉴 하나하나 재료를 아끼지 않은 느낌이 나기 때문에 충분히 가치 높은 저녁식사였다고 생각한다. 주로 이런 고급 식당은 1번 가면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반면 이 곳은 한두번은 더 가보고 싶은 곳. 예상보다 털게 자체는 명성만 못했지만 코스를 선택한다면 후회 없을거라 생각한다. 모부님 뫼시고 가보고 싶음.


성륭행해왕부 주소 : 216 Jiujiang Rd, Huangpu Qu, Shanghai Shi, 중국 200000

성륭행해왕부 영업시간 : 오전 11시~오후 2시, 오후 5시~오후 10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