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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이태원] 어떤 버거가 맛있냐고 물어본다면 라이포스트를 가라고 해주겠다(Rye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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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즈음부터 서울에서 수제버거 열풍이 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제버거란 무엇이냐. 사실 맥도날드도 손으로 버거를 조립하니 수제는 맞지 않나? 싶었으나 수제버거 맛집이라고 올라오는 곳들을 보면 5가지는 족히 되어보이는 야채들에 패티와 치즈, 파인애플 나부랭이까지 차마 양 손으로 잡아들어 한 입에 베어물 수조차 없는 높이로 버거를 쌓아낸 것들이었다. 설탕을 코팅한 도넛으로도 버거를 만들더라.

스무살 떄까지만 해도 내가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지만 실상은 난 그저 맛있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불고기버거만 먹던 맥날인생과 1955를 먹는 맥날인생은 달랐다. 버거킹 처먹다가 모스버거 악개가 될 정도로 나름 내 입맛은.. 변했다. 최소한 나에게 더 맛있는 쪽으로.

볼트같은 스테이크하우스나 파인다이닝에서 시그니처로 내놓는 버거 형태를 띈 제 3의 요리는 제외해보면, 서초동의 길벗버거나 여의도의 바스버거, 선릉 파이어벨, 이태원 레프트코스트의 과거시절 등등 몇 가지 내 입맛에 맞는 버거를 먹은 뒤 마음 한 켠으로는 더 맛있는 버거를 먹고 싶다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꺼운 양상추를 한웅큼 넣어 텁텁해진 버거가 판을 치고 버거킹보다 못한 빵으로 버거를 쌓아대는 가게가 넘쳐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버거집을 찾을 수 있을까?

치즈도 못 먹는 삼류인간으로써 버거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예전에 서양인 친구에게 추천 받았던 이태원 라이포스트가 떠올랐다.

일이 있어 화요일 오후에 반차를 쓰고 와인도 살겸 이태원 나들이를 다녀왔다.

늦은 점심에 방문했더니 내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블로그 홍보도 없고 좋아하는 사람들만 알아서 오는 가게로 보였다.

메뉴판을 받아들었더니 주문하고 싶은 메뉴가 오조오억개..

샌드위치집답게 샌드위치 구성부터 남달랐다. 아보카도베이컨 샌드위치랑 치폴레 치킨버거도 너무 먹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위장은 딱 한 개였으며 그마저도 술이 없으면 대식(大食)이 안되는 지질이 나부랭이였던 것이다.

구냥 올아메리칸 치즈 빼고 주문... 

​1/2 분량의 감튀가 나오는 세트도 가능하지만 진정한 버거이터는 프라이를 꼭 단품으로 시킵니다.

thick cut 스타일의 플레인 감튀를 먹을까 했지만, 자극적인게 땡기는 날이었으니 불고기 김치 프라이즈를 한 바구니 주문했다. 사실 서울의 많은 서양요리집에서 시도하는게 바로 이 kimchi fries고 그 중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게 어찌 단 한개도 없기 때문에 주문 당시에도 별 기대는 없었다. 푸틴을 치즈 빼고 칠리만 얹어 먹어볼까 했으나 이 날 푸틴은 안된다고..

생맥으로는 슬로우 IP. 주문.. 도합 3만원에 가까운 분량의 주문을 뽑아내고 얌전히 밥을 기다렸다.

​이태원에 자주 다니는 작은 와인샵에서 술 두병을 샀더니 이런 힙한 와인 백을 주셨다.

거지발싸개같은 디자인의 와인가방 하나 주면서 생색 오지게 내는 신세계 와인앤모어와는 다른 인심..

대기업 다니고 송년회로 돈까스뷔페 가는 것보다 중소기업에서 본앤브레드 한우 회식하는게 나은 것 같다.

송년회로 돈까스 뷔페가는거는 참고로 실화 맞음..

​불고기 김치 프라이가 먼저 나왔다.

사진만 봐도 존맛의 기운이 흘러나온다. 냅킨끈 길어본 사람이라면 시각과 후각만으로도 1차적 존맛을 판별할 수 있다.

불고기와 볶은 김치, 칠리와 마요네즈, 쪽파를 수북히 올린 뒤 케첩을 같이 주었다. 엑스트라 케첩에서 좀 감동 받음

​대충 여러 재료를 한 번에 포크로 들어올려 한 입 먹어본 결과는 놀라웠다.

센 불에 양파와 달달하게 바짝 볶아낸 불고기의 개인적인 맛에서 진한 마요네즈와 적당한 토마토로 휩싸인 바삭한 감자튀김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엇 하는 순간 시큼하고 아삭하게 씹히는 볶은김치의 감성이 이어지고 그 모든 프로세스의 사이사이에 쪽파의 완벽함이 더해진다.

사실 칠리 같이 흥건한 소스가 아니면 감튀와 먹기 애매할 때가 많은데 (고체 + 고체 = 무엇) 토핑의 양이 원체 많아서 그런지 약간의 부족함도 안 느껴지는 풍만함이었다. 그리고 혹시 손님에게 토핑이 부족할까봐 케첩도 따로 한가득 담아준다.

이 프라이에서 내가 불만을 느껴야할 부분은 KTX를 타고 지나가면서 봐도 없었다.

굳이 치즈를 제외한 맛의 볼륨이 이정도인데 치즈를 넣는다면 얼마나 가득한 맛일까?

​감자튀김으로 만든 요리에서 이렇게 큰 만족을 느낀 적이 있었을까?

아마 초딩때 첨으로 먹어본 롯데리아 양념감자 양파맛 이후로 없었던 것 같다.

씁쓸하고 향이 미칠듯히 피어오르는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면서 미식이 주는 행복을 느끼며 버거를 기다렸다. 탭비어도 이 정도면 오케이

​내가 주문한 올아메리칸 버거는 멋진 접시에 올려진 채로 준비되었다.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덕분에 가게에서 직접 만든 브리오슈 번의 질감이 잘 표현되었다. 사실 라이포스트의 버거를 찾아오게 된 개연성도 이 브리오슈다. 거칠게 구워낸 번보다는 브리오슈 스타일로 구운 번이 내 입에 월등히 맛있음.

입이 작고 턱이 안 벌어져 평소에는 양키새끼들에게 병신 취급 받아도 꼭 나이프로 잘라먹곤 했는데 안 흘리면서 버거 먹는 법을 배운 이후로는 두 손으로 꼭 붙들고 먹기 시작했다.

살짝 바삭하게 구워진 브리오슈번을(기대만큼 촉촉부들은 아니었지만 준수함) 두 손으로 납작하게 눌러서 꽉 쥔 뒤 약지와 소지로 버거 뒷부분을 받치고 버거는 수평으로 입 앞에 갖다대고 먹었다. 접시로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육즙은 어느 순간 멈추어서 패티 사이에 그대로 남아 흐르고 있었다. 이빨이 번을 통과하자 가장 먼저 조우한 것은 피클이었는데, 피클이 들어간 버거 중 가장 모범적인 사례였다. 절인 오이라는 개념에는 충실하면서 소금간은 슴슴하게 되어 피클의 보조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 피클은 그 어느 재료도 압도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흐뭇했다.

로메인이 찢어지면서 고슬하게 반죽되어 살짝씩 바스러지는 패티 두 장을 감싼다. 번 사이에 낑겨 있는 바삭하게 씨즐링한 베이컨과 토마토도 모난 부분 없이 얌전하게 맛의 조화를 맞춰주었다. 간이 살짝 안 된 느낌으로 이렇게 평화롭고 맛있는 느낌을 주는 버거라니. 패티의 특별함은 없지만 버거는 자고로 바란스의 음식인것을..

햄버거라는 음식에서 존나 맛있음이란 화려함이 아니다.

패티의 grease가 번을 얼마나 눅눅하게 하는지, 간이 강한 피클이 과연 이 버거와 어울리는지, 토마토와 아보카도를 함께 씹는 질감이 어떤지, 치즈의 향이 너무 강하지는 않는지, 소스의 염도는 패티에게 적당하지 등의 재료간의 합이 요리사로부터 잘 고려되어 도출된 결과가 진짜 좋은 버거라는 생각이 든다.

버거도 프라이도 너무 맛있어서 진짜 배터지게 먹었다. 그래도 남겼지만.. 원래 진짜 맛있는거 아니면 힘들게 완식을 시도조차 하지 않음. 앞으로 버거집은 여기로 정착해야겠당.. 레프트코스트도 뽀빠이 버거 사라지고ㅠㅠ

먹은지 1주일 정도 지났는데 아직도 기억에 좋게 남아 오늘 후기도 좀 푸드포르노식으로 작성한 것 같다.

치즈를 안 먹는 나의 버거와 치즈를 넣어 먹는 여러분의 버거는 맛이 다를 수 있으니 참고를 부탁드리는 바지만 확실히 자신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인지가 주방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