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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서교동] 마시타야, 쇼유라멘 한 그릇, 토요일의 점심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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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돈코츠 라멘이 지겨워진 것은 흔한 일일까 흔하지 않은 일일까. 그 뽀얀 국물과 단단한 면발을 상상만 해도 벌써 밥 한 그릇까지 비워내었던 사랑의 시기는 지났다. 일본을 방문하면 예의상 먹는 돈코츠 라멘 한 대접이 맛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서울에서 발걸음을 하기엔 흥미가 식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너무 많이 먹어서 질렸다기보다는 유명 라멘가게들에서 표정이 썩는 경험을 겪은 일들이나 원래 면을 많이 먹지 못하는 내 자신 등이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어쨌든 라멘 육수에는 돼지뼈만 있는 것은 아니니.

어제는 홍대에서 쇼유라멘으로 유명한 마시타야를 방문했다. 이화여대 근처에서 후토마끼를 먹고도 지워지지 않은 약간의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들렸다.

브레이크 타임이 없다는 점이 놀랍다.

​외관샷은 아주 오랜만에 찍어보는데..
그릇 하나를 제외하면 찍을 건덕지가 존나 없는 라멘집의 특성상 사진 분량이 부족할 것을 예견하고 셔터를 눌렀다.

긴 분량을 뽑아내는 것은 too much writer의 즐거움이다. 오늘도 구구절절 ^^7

​분량 걱정 덕분에 더 친절한 블로거가 될 수 있었다.

가게 앞에 놓여진 기계에서 라멘을 주문하고 결제를 하는 전형적인 라멘집의 주문방법이다. 돈코츠라멘과 쇼유라멘이 메인메뉴였고 차슈나 면, 계란 등을 추가할 수 있다.

생맥 한 잔 때리려고 했는데 병맥만 있는거 실화냐고

​오후 세시가 넘어간 시각에 방문하니 혼자 카운터석 한 줄을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다. 테이블석 없이 대략 15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어보이는 공간에는 나, 20분 뒤에 들어오신 사람 한 명, 김치를 너무 먹고 싶어 하셨던 사람 두 명이 있었다.

남자손님도 있었던 것 같기도..

​간단한 안내문이 적혀있다.
라멘은 원래 소리내어 먹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저는 예민충이라서요 조용히 먹겠습니당..

​8천원짜리 쇼유라멘 한 그릇이 나왔다.

시금치와 절인 죽순은 뭐 뻔하니 패스하고. 그런데 차슈가 너무 얌전해보였다. 나는 분명 불질 제대로 된 차슈 사진을 보고 왔는데 이게 어떻게 된건지 싶었다.

황급히 인스타그램을 켜서 마시타야를 검색해보았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두꺼운 차슈였는데, 왜 이 날은 닭햄과 비주얼이 비슷한 수비드 목살 차슈였던 것일까?

​마시타야 공식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보았다. 어떤 손님이 두껍고 무거운 차슈와 국물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수비드한 목살로 바꾸었다고 한다.

어떤 개새끼인지 진짜 걸리면 욕해줄 것 같다.
국물에 차슈 향이 물씬 배어있는데 불향이 아니고, 최종적으로 느껴지는 향은 훈제향이다. 훈제향과 단맛이 풍부한 간장 국물을 떠먹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맛있는 맛'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확실히 국물이 산뜻하진 않다. 그래서 두툼한 비계 차슈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같은데.. 아.. 과연 이게 최선인가 싶었다.

맛있는 라멘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눈 앞에서 무산된 기분이었다. 불의 터치가 없는 쇼유라멘은 리얼루다가 내 취향이 아니다.

​다소 끈적끈적했던 면발.
그 와중 한 쪽에서 자아 표츌 하고 있던 시금치.

​아지타마고의 익힘은 완벽했다.
지나치게 익혀서 포슬하게 국물 속에서 번져가는 노른자 부스러기 참사나 덜 익혀서 국물과 흐르는 노른자가 일체되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맛간장 간이 거의 안된 편이라, 살짝 심심했다.

​이 정도 먹었을 때 식사를 지속하는 것을 포기했다.
아.. 맛이 없는건 아닌데.. 차슈와 거슬리는 훈제향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시금치향과 훈제향이 감도는 달달한 간장 국물을 완식하기엔 내가 너무 까다롭다.

은근히 밥 한 그릇도 주문해서 국물과 먹는 것을 기대하고 왔는데 흑흑 이래저래 나와 안 맞았던.

좀비커피 로스터즈에 들려서 글을 조금 쓰고 저녁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그래도 마시타야 덕분에 쇼유라멘 시식에 대한 의지가 생겼으니 고마운 마음에 굳이 블로그 후기를 썼다. 요즘은 딱히 맛있게 먹지 않아도 꼬박꼬박 후기를 남기는 듯하다. 블로그 흥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