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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합정] 카밀로(Camillo) 라자네리아...볼로냐의 라자냐를 사랑하는 작은 식당의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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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인생 개판으로 회사 다니면서 살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서교동에 새롭게 생긴 라자냐 식당을 추천해주셨다. 사유는 나름 서울 네임드 미식가들에게 챙김받는 뉴비식당이란 점, 그리고 나는 라구를 좋아한다는 점.

안 가볼 이유도 없을뿐더러, 이렇게 작게 새로 생긴 식당이 주는 호기심에..

어느 초가을의 토요일 사회적 자폐(a.k.a 혼밥)를 하러 방문했다. 

뭐 설마 소스가 떨어지겠어?라는 생각에 저녁 늦게 가려고 했는데, 미리 그 날 점심에 방문하신 분이 소스의 여분을 걱정해주셔서 저녁 6시경 방문함. 지금은 모르겠는데 암튼 예약 아닌 이상 점심에 가야 널널한 메뉴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작다고 들었는데 정말 작음. 근데 안쪽에 작은 룸도 있긴 있음. 시원하게 오픈된 주방 바로 앞에 6명 정도 착석 가능한 카운터가 있다.

조리도구들 너무 새거 티나는거 아닌가요.. 보는 사람 탐나게..

정겹고 훈훈한 atmosphere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세련되고 분위기 있었다. 세련됨은 새삥에서 나오는 것 같고.. 분위기를 굳이 언급한 이유는 따뜻하면서 적당히 어둑어둑한 것이 꼭 발렌타인데이 같다고 해야하나 암튼 그런 거 있음 저는 분위기충이라 너모 조왔다고한다.

저녁 6시에 방문했더니 라자냐가 3개 밖에 안 남아있었음 따흑.. 이 정도 재고량은 마치 과거 녹사평 매니멀스모크하우스를 방문했던 것과 같네. 

가지호박 라자냐(1.4)와 하우스와인 화이트 한 잔을 주문했다. 라구에 화이트 페어 괜찮으려나?싶어서 살짝 여쭤봤는데 정낙영 셰프님께서 친절하시게 대답해준 내용은 즉슨 카밀로의 라구는 그렇게 레드만 찾을 정도로 무겁지 않고 조화롭기 때문에, 충분히 화이트와도 잘 매치가 된다는 말이었다.

결론은 취향 따라 레드나 화이트를 고르면 끝!인 부분이라 상당히 장점이 아닌가 싶다. 요즘 안그래도 레드가 내 입에 잘 안먹혀서..

the wolftrap viognier chenin blanc grenache blanc 2016

프랑스 북부출신의 비오니에와 슈냉블랑을 블렌드하여 제조한 남아프리카 화이트와인이다. 삼각형 밑의 두개의 점을 연결하는 듯한 느낌으로 베이스가 촘촘한 맛. 격식을 잘 차리면서 음식의 맛을 가리는 튀는 향은 별로 없고 너무 시큼하지도, 떫지도 않으며 기본적인 <향긋한 화이트와인>의 정석 팔레트를 따라간다.

하우스와인으로 이 와인을 선택한 것은 정말 훌륭한 시작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하우스와인 = 그냥 싼 와인이라는 인식이 서울 전역에 퍼져있는데, 정말 맛에 대해 신경을 쓰는 식당이라면 가격대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음식과의 조합, 기본적인 퍼포먼스를 고려해야한다.

아무리 한국이 와인 시장에서 뒤쳐져있다고해도 가격대 낮은 와인 중에서 좋은 와인 하나 없을까. 조금만 찾아보면 차고 넘친다. 하우스와인 개떡같으면 그 식당은 기본적인 노력도 하지 않는 식당이다. 거르면 됨.

라자냐를 주문하면 특이하게도 밥 한그릇과 샐러드, 후식을 함께 정찬으로 준다.

나름 잘 대접하고 싶었던 셰프님의 마음이 아닐지..

​밥은 무려 레몬껍질을 갈아넣은 듯한 레몬밥임.

먹고 남은 라자냐 소스랑 슦까묵으라는 셰프님의 빅픽쳐

​그린올리브 한 알이 들어간 샐러드도 소량 나오는데, 치즈를 아낌없이 갈아주신다.

샐러드에 대한 집착도 없고 치즈에 대한 사랑도 없는 사는 사람은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자가제면한 생면라자냐와 베샤멜, 새로 끓여져나온 볼로네제(라구)를 켜켜이 쌓아 치즈와 함께 구워낸 뒤, 눈 앞에서 파르미레지아노 치즈 그레이팅을 보여주시는데 진짜 미친듯이 갈아주셨다.. 시작부터 갈리는 스피드가 남달라서 나는 2초 후 스탑을 외쳐야했을뿐.

​전반적인 시식소감은 굉장히 젠틀한 맛의 라나쟈.

사실 라구하면 무식하게 고기랑 다진 야채랑 와인이랑 콸콸 쏟아넣고 존나게 끓인 터프한 북부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meaty한 스타일의 라구가 많아 더 그런 인식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 같다. 

다만 카밀로의 소스는 온화하며 라자냐면을 지가 이겨먹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느낌. 면에 앞서지 않고 면과 함께 가겠다라는 대인배같은 의지를 보여준다. 

텃밭 출신이라는 가지와 호박 덕분에 좀 더 식감이 나아지고 조화로운 맛이 나긴 나는데... 아쉬운점은 라자냐가 생면인점 만큼 너무 보드랍고 말랑하고 따뜻한 반죽스러워서 베샤멜까지 합치니 투머치밀가루? 이런 느낌? 

너무 착해서 데이트 해봤자 오래 못가는 남자 보는 느낌이다. 완식 못했다는 뜻..

​하지만 라구소스는 너무나 맛있었습니다. 온화한 맛이라 그냥 퍼먹어도 부담이 없고.. 하지만.. 그냥 퍼먹기에도 부족한 소스양.. 덕분에 밥이랑 섞어먹으려고 해도 물량이 없어서 바닥까지 긁어먹어야하는 그런..

아마 내가 마지막에서 몇번째 안되는 손님이라 그런 것 같다. 오픈 극초기에 갔기 때문에 소스 넉넉화를 못하신 것 같기도. 살다보면 그럴수 있지.. 언젠가 다시가면 넘치는 소스를 볼 수 있었음 좋겠눈뎅..

어쨌든 밥이랑 먹어도 맛있다. 와! 존나 맛있네! 정도의 새로운 발견은 아니지만 어? 맛있네? 정도의 의외로 괜찮은 발견. 라구덮밥 이렇게 네이밍해서 사이드메뉴로 팔아도 추가로 먹을 것 같아요. 레몬향나는 밥이 그렇게 미친 존재까지도 아님.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셰프님이 각성하셔서 갓 뽑아낸 파파델레면으로 잔여손님들에게 라구를 조금씩 만들어주셨다. 감사합니다.

​위에서 아쉬움을 표현했던 <너무 유들유들한 라자냐>와 같은 반죽일줄 알았는데, 조금 더 탄력적으로 뽑아낸 파파델레여서 솔직히 이거를 더 맛있게 먹었음. 이에 처음 닿는 표면부터 느낌이 다르다. 더 매끄럽고 매력적이다.

​제철 과일도 조금씩 챙겨주시는 라자냐 한상.

가격도 괜찮고, 느낌도 좋고 메세나폴리스 근처에서 한끼를 때워야할 날이 찾아온다면 다시금 카밀로 라자네리아를 갈 것 같다. 라구덕후로써 라구를 소중히 대해주는 식당의 존재가 얼마나 의미 깊은지 머글들은 모를 듯...ㅠㅠ



<번외>

예전에 좋아했는데 다시가니 좆같아진 식당이 있어서 빡쳐서 씀

​홍대 나스 후토마끼 먹으러 카밀로 가기 전에 점심으로 들렸다.

후토마끼 넘 좋아 헠헠 이 후토마끼 누구꺼야

점심부터 맥주는 한잔 때리는걸로

​후토마끼 점심정식 시켰는데.. 아니 왜 이렇게 스잘데기없는 야채가 많아진걸까? 이렇게 큰 크기도 내 기억으론 아니었는디.

양배추라뇨. 로메인줄기무침과 시소, 달콤하고 시원한 계란말이, 새우튀김 이렇게 기본적인 장점은 다 갖춰놓고선 저 족같은 양배추 폭력배들 때문에 다 망했다. 크기가 무조건 계속 커진다고 좋은 것은 아닌데..

안그래도 입 작은 사람이라 울면서 두 입에 나눠먹었다.

사시미 맛있는 일식집이라 이렇게 사시미랑 후토마끼 주는거 좋아했었는데..

여러모로 실망하고 다시 재방문하지 않을 집.

그냥 후토마끼 먹을거면 청담동 아키가서 포장해와서 집에서 혼밥해야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