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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서교동] 어중이떠중이들 사이에서 술을 찾아 먹기에 맛(味)이 있는 밥집, 엄마주방 풍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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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사는 것 같지 않은 날들을 지새다보면 시간이 참으로 빨리 간다. 잠을 잘 수 없는 고통은 참고 품기에 넘나 큰 것. 그래도 인생이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알콜 섭취가 아직까지 부덕하지 않은 사회 풍토니까 눈치 안 보고 술을 마심.

올해 밴드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멤버들 중에 홍대 근처에서 사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도 밴드 연습은 홍대에서 해야한다. 요리를 배우고 싶은데 아이슬란드나 캄보디아로 유학가는 사람이 없듯이.. 음악을 하고 싶으면 다른 동네 말고 무조건 홍대로 캄캄

그런데 이 동네 진짜 맛있다는 장소 찾기 어렵다. 대충 구색만 맞춰서 페북에 오질라게 광고만 때리는 한상요리집들은 많은데, 구경 가보면 표정에 확신이 없는 20대들이 빼곡히 늘어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밴드합주가 끝나고 늦은 시각 남겨진 둘이서 서교동 골목을 뒤지다가 맛은 없고 자본만 남겨진 이자카야 등에 지쳐 반쯤 포기했을 때 친구가 닭김치찜이라고 써진 야외 메뉴판을 발견했다.

이 기깔나는 안주는 뭐지? 하면서 술집 외관을 봤는데 겉모습부터 '우리는 밥을 맛있게 한다. 술을 먹고 싶으면 먹어라'라는 분위기가 풍겼다. 나는 맛집 찾기에 있어서 내 감을 99% 신뢰하는 관계로 망설임 없이 고고

​메뉴판. 전반적으로 착한 가격이다.
다양한 메뉴는 아닌데, 글씨 하나하나에 무게감이 있다.

뭔 미친 소리같겠지만 메뉴판은 그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함... 소개팅 나가서 첫 와꾸보고 첫 느낌 판정 내리듯, 식당에 앉아서 메뉴판을 훝어보는 순간이 그 식당과 내가 어떤 사이로 발전할 것인지를 절반쯤 확정 짓는 순간이라는 말..

​낮에는 밥을 팔고 저녁에는 밥과 술을 판다고 한다.
덕분에 미역국이 맛이 있어졌다.
직장인들 인생 살기 진짜 좃같은데 점심에 먹는 미역국마저 맛이 똑같이 좃같아바 진짜 그거 넘 실엉...

제일 싫어하는게 쓸데없이 미역국에 조미료 안 넣는건데 다행히 조미료 좀 치신듯. 뭐 들기름에 문어를 볶고 가문 대대로 내려져오는 비법으로 맛을 낸 특제 성게알 미역국 이런게 아닌 이상.. 엥간하면 미역국에 조미료 없이 자신 갖지 맙시다. 상식적으로 물에 빠진 미역만으로 맛이 있을리가

​​공기밥 한 그릇을 주문하니 밑반찬들이 깔린다.

집에서 생활형 요리를 하지 않을뿐더러 가족이 차려주는 밥을 잘 먹지 않는 나에게 이런 n첩 밥상은 늘 고맙다. 집에서 이렇게 반찬해먹으라하면 죽어도 안 먹는다. 그래서 나는 밑반찬 잘해주는 조신한 애인에 대한 로망이 있다.

ㅋㅋ존나 의식의 흐름ㅋㅋ

여자라면 대장부지!

깔끔..하다가보단 약간 청주 특유의 발효된 과실향이 끝에 은은히 맴돌고. 한라산보다는 더 센치한데.. 괜찮음. 앞으로 대장부 파는 곳 있으면 대장부만 먹을란다.

나는 무조건 그 범주 안에서 최대한 도수 센 술이 좋다.
와인 중에서는 신대륙 진판델 품종이 비교적 도수가 높으니 나름 좋아하고, 다른 품종으로 구매를 할 때도 가급적 도수 강한 것을 고른다. 레드와인의 경우 더 높은 도수의 와인이 대개 더 잘익은 포도로 빚어진 사실 역시 맞다.

서민용 소주 중에서는 한라산 아니면 대장부.

​이런 햄, 볶음밥에 들어가거나 아무튼 요리에 들어가면 그 향이 너무 맡기 싫어서 안 먹었고 이렇게 햄만 데쳐서 케챱이랑 주는거 초등학교 때 친구 집 놀러가면 친구 부모님이 계란후라이랑 해주셨는데 그 뒤로 먹은 적 없다.

별 생각 없이 먹었다가 내가 기억하는 맛보다 더 맛있어서 밥이랑 많이 먹음. 단단한 햄의 겉부분의 맨질맨질한 표면을 이빨로 으깨고..

​"야 나 햄 별로 안 좋아해"
"(뭔 개소리지) 일단 밥이랑 먹어봐"
"헐 존나 마싯엉..."

내 취미가 했던 말 무르는거고 특기가 소신 바꾸기고 장점이 일관성 없는 것임

​닭김치찜을 주문하면 이렇게 왠지 즉석떡볶이를 해먹어야할 것만 같은 전골남비에 당면과 떡, 김치 한 포기 등등을 가득 담아준다.

내가 냄비보단 남비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 블로그 어딘가에 설명이 되어있긔

​묵은지와 김치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이 김치 덕분에 내가 이 장소를 좋아하게 되었다. 앞선 문장을 보면 크게 특출할 법한 김치는 아닐텐데... 신기하게 거슬리지 않고 온건한 입장에서 요리에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나는 김치를 작은 조각으로 조사버리는게 좋은데, 김치는 새끼야 시발 죽죽 찢어먹는거라고 주장하는 친구 때문에 가위의 권리를 포기했당

​육수 한바가지 넣고 내어준 까닭에 한동안 끓여야한다.

실제로는 붉은 색에 가까운데 이 망할 파나소닉 색감 잡아온 것 좀 보소. 덕분에 타 카메라 만질 때 화이트밸런스 아주 잘 조정하게 되었다. 암튼 누런 빨강보다는 진한 빨간에 가까운 실물 색깔은 여러분이 상상해주세요...

​닭만 먹으면 심심하니까 주문한 호박부추전.

호박과 부추라니. 처음에는 늙은 호박을 생각하고 뭔 미친 조합이지 걱정했는데 채 썬 애호박과 부추를 섞어 부친 전이었다. 접시가 차고 넘치는 지름으로 잘 부쳐진 모습.

​전 맛있기 참으로 어려운데 애호박과 부추를 한데 모으니 이렇게 맛있구나. 시중에 전 파는 술집 가보면 술 처먹는 인간들 미각 상실한거 노리고 대충 계란에 빠트려 지져낸 아무 식재료나 던져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풍류의 전은 바삭했고 애호박이 사탕부스러기처럼 달콤했고.. 어른스러운 부추의 상쾌함, 깔끔함, 불필요한 재료(양파라든지)를 확 줄여서 호박과 부추만 돋보이게 한 상식적인 시도가 좋았다.

친구가 갑자기 밑반찬으로 나오는 진미채를 전에 얹어 먹으면 맛있다고 소리를 질러서 따라해봤는데 존나 맛있었다. 리스펙트다. 저렇게 메인음식에 아무 반찬이나 아무생각 없이 올려서 먹었을 때 '더' 맛있기는 어려운데 한번에 성공한 저새끼가 나보다 혼모노다.

​닭이 국물에 졸아든 모습을 보이자 그제서야 먹기 시작한다. 감자는 없지만 김치가 있으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말랑한 떡 조금과, 부드럽게 아른거리는 푹 익은 당면들은 국자로 떠서 먹었다.

나는 닭 자체를 즐기기보단 닭으로 만든 그 요리에 더 초점을 맞추는 편인데.. 실제로 닭다리에 환장하지도 않고, 부위를 따지지도 않는다. 닭으로 무엇을 만드냐가 중요한데 이런 닭도리탕 계열에서 중요한 것은 국물과 함께 넣은 식재료가 만들어낸 최종적인 형상이다.

술 한 잔 털어넣고 익은 김치의 두툼함과 새큼함으로 입을 헹구면 맛도 있고 알콜 정리도 깔끔히 된다. 진한 고기의 질감을 원하면 국물 속에 반쯤 눌어붙은 닭봉 한 덩이를 꺼내 천천히 뜯어먹고, 베어먹고.

​면에 환장하는 친구를 위한 당면사리 추가. 육수도 부어준다. 트페미 친구가 합류했는데 진짜 술 처마시면서 존나게 싸웠다. 나는 래디컬 페미.. 한 명은 중도페미.. 한 명은 트페미 이거 ㄹㅇ 지구멸망조합임.

​술은 술대로 먹으니 새로운 안주가 필요해서 시킨 육전. 솔직히 평소에는 왜 소고기로 전을 부치나 이게 내 가치관인데 술 들어가면 자아를 잃고 가치관을 잃어버린다.

육전 자체는 그저 그런 육전인데 파절이의 미친 상큼함과 머리속 더러운 생각을 날려버리는 조화로움이 다 해 먹은 요리. 고소한 계란옷을 입은 보드랍고 얇은 소고기를 초간장 살짝 찍어 거칠게 씹히는 파무침 예닐곱가닥 올려 먹으면 뭐... 맛 없다고 생각하긴 어렵지 않을까?

알고보니 DJ 개새끼의 이하늘 어머님이 하시는 곳이더라. 뭐 어머니는 죄가 없으니 그 사실을 깨닫고 잠깐 스쳐지나간 '뭐 이하늘? 이런 씨벌'이라는 생각은 접어두었다.

그렇게 유명한 곳은 아닌 것 같은데 나처럼 한 번 온 사람은 두 번도 오고 세 번도 올 곳이겠지. 여태까지 난 풍류에 두 번정도 가보았고, 올해가 가기전에 같은 횟수로 추가 방문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