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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이태원] 빌라 드 라비노, 내 와인이 빛이 나길 바랄 때 찾는 이탈리안 퀴진(Villa De Lav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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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노와 연을 맺은지 어언 일년이 훌쩍 지났다.
물론 일방적인 인연이다^.~ 상호관계 별로 없음 따흑

라비노 와인샵의 내 취향에 맞는 수많은 와인들로 시작해서, 조창희 셰프님의 빌라 드 라비노를 알게 되었고 작년 초겨울 오픈한 소설옥을 종지부로 달려온 내 사랑.

와인샵은 정리를 하셨지만, 남은 두 식당을 도맡아 최선을 다해주시니 늘 감사합니다. 콜키지 프리... 사랑...

라비노샵을 정리하신 이유는 모르겠다. 어차피 라이트 소비자였기 때문에 별로 안 궁금함..

사랑이 변변치 않아 크게 멋져보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소소하게 블로그에 최근 방문한 빌라드라비노에서의 다이닝을 적어보려고 한다. 딱히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늘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신기한 레스토랑이다.

​8만원의 코스로 미리 셰프님에 예약 요청을 드렸다. 메뉴는 felxible하게 변경되는 구성임.

그릇을 사랑하시는 셰프님 덕분에 근사한 식사가 가능하다.

​예전에는 없었던 작은 꽃병이 생겨났고, 뭔가 좀 더 프로방스틱해졌다. 프로방스가 모든 이탈리안 퀴진의 궁극적 인테리어 지향점일까?

가끔 궁금함. 빌라드라비노는 자연주의를 베이스로 둔 식당이라 올바른 수순일수도.

​그 날의 저녁을 위한 7코스.
재밌는 손글씨로 적혀진 즉흥적 메뉴인데.. 보통 이럴 때는 '인간미가 묻어나는 손글씨네요~' 내지는 '동글동글 귀여운 손글예요ㅎㅎ' 라고 소개하던데 나는 그냥 웃겨서 재밌다고 표현했다.

비웃는게 아니라 그냥... 재밌어서 웃기다. fun에서 이어지는 funny의 순서를 바꾸면 무례할 수도 있기에 말은 조심해서 하자.

​모르는 사이 아페리티보가 생겨났다(충격)
무슨 이탈리안 리큐르였지 소믈리에분께 설명을 들었지만 기억력 재기해서ㅎㅎ 캄파리였나

첫 모금은 씁쓸하니 다소 강한 알콜의 힘이 느껴졌다. 혀 위에 올려놓고 굴리면서 식전주 치고는 터프한데? 싶었으나 혀 뒤로 슬슬 넘어가면서 보드랍고 달콤하게 채워주는 느낌이 영락없는 아페리티보다.

이 곳에 몇 달 전 방문했던 기록은 블로그에 적지 않았는데, 그때 새로 오신 소믈리에분을 처음 뵈었다. 그때 봽고 또 얼마 뒤 소설옥에서 바로 옆 테이블 관계로 마주봽게 되어 소심하게 건배도 했고... 이 날 방문했을 때도 바로 알아봐주셔서 감사했다.

처음에는 정말 조셰프님 혼자 계셨는데.. 어느덧 수셰프님도 새롭게 오셔서 3인 체제 주방으로 구성되어있는 것 같더라.

​식전빵, 올리브 오일, 블랙올리브퓌레.

맛있는 이탈리안 퀴진을 겪어보게 되면 다시는 식전빵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식사를 처음으로 조우하는 순간의 기쁨을 짓밟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긔. 올바른 올리브오일과 그에 걸맞는 텍스쳐의 빵이 준비되어야만 하는.

​오른쪽은 은은한 풀향의 부드러운 엑스트라버진이고, 왼쪽은 마치 사포같은 느낌의 거친 맛에 야생의 향을 지닌 오일이다. 왼쪽 오일에는 소금이 조금 들어갔는데 그 덕분에 확실히 양쪽 맛의 대비를 이루게 되었다.

​지나치게 부드러운 흰빵이 아니라 매력적인 빵. 나는 작년에 맛볼 수 있었던 바질페스토와 통올리브가 그립다. 그 탓인지, 아니면 대화를 정리하느라 어수선했던 내 마음 때문인지 다소 맛에 집중을 못했던 단계...

​심심해서 가져온 샴페인은 앙드레 끌루에 그랑 리저브 N.V인데 편하게 마실 수 있으면서 밸류가 좋은 샴페인 중 하나다. 안 마셔본 실버라벨을 가져와볼까 고민하다가 익숙한 남색라벨을 골랐는데 소믈리에님이 실버라벨이 더 맛있다고 ㅠㅠ 다음에 추라이 해볼게요.

​우아한 모양의 플루트 글라스에 소믈리에님이 두 번에 걸쳐 담아주신다. 예전에는 잘토잔만 보였는데 올해는 더 다양해졌다. 브랜드 명칭은 잊었다..

​​​아페리티보 단계에서 서브된 메뉴는 steamed 새송이버섯과 산 다니엘레 프로슈토, 초리조 그리고 약간의 피클.

이탈리안 다이닝에 익숙하지 않아 아페리티보가 식전주의 의미를 포함하여 정식 코스 구성인지는 잘 모른다. 그냥 머 안티파스토 전에 즐기는 간단한 메뉴 정도로 치자.

빌라 드 라비노가 버섯을 다루는 방식은 거의 완벽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완벽함이란 단어를 사랑하지만 요즘은 지나친 확신이 독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거의'라는 수식어를 붙인 점을 고려해주시기를

버섯은 아주 잠재력이 뛰어난 식재료인데, 그 버섯을 살살 달래며 요리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느냐, 아니면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이기적으로 요리해서 내놓느냐 이렇게 두가지로 갈리게 된다.

버섯의 고유함을 이끌어내는 맛이었던 이 날의 새송이는 만족. 촉촉한 텍스쳐에서 자연이 배어나온다. 소금이 살짝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곁들이는 프로슈토와 초리조가 있으니 염분을 추가 요청할 필요는 없었다.

프로슈토란 장르는 가끔 기가 너무 센 듯한 맛이 걸리는데, 산 다니엘레의 프로슈토는 뭐 워낙 명실상부해서... 이탈리아 돼지의 허벅지가 산 다니엘레 지역에서 멀끔하고 젠틀한 모습으로 각성했다고한다. 꼬리한 맛과 풍부한 부드러움이 좋지요.

초리조는 내가 그닥 즐기지 않는 육가공류다. 슬라이스된 경우에 한하여. 얇게 썰린 초리조는 가끔 그 유쾌한 매콤한 향기가 주제넘을 때가 있기 때문에.

​앙드레끌루에 넌 정말 따뜻한 샴팡이야... 누가 널 싫어하겠니...... 입맛을 최고로 이끌어주는 산미를 첫번째로 조우하고, 어느 쪽에도 크게 치우치지 않는 싱그러운 향기가 옆에서 보조해주는 느낌이다.

절친 같은 느낌. 뵈브클리코처럼 뻔하지도 않고

슴슴한 버섯을 중심으로 강렬한 프로슈토를 먹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이제 코스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잘 짜여진 구성은 언제나 러브

​제철 음식이 없으면 라비노가 아니지..
으깬 대구로 만든 아란치니를 안티파스토로 맞았다.

​내 접시는 치즈가 빠진 버전ㅋㅋ 치즈 법규 먹어​

​곁들인 푸성귀 머엮죠 기억 재기ㅜ
아란치니가 서울에서는 밥알이 들어간 버전으로 많이 만들어지지만 그 속재료는 하기 나름이다. 올 가을 들어 소격동 이태리재가 그립군 요즘도 예약 박터지나...

​포슬한 대구가 깔끔하다. 튀김도 과하지 않다.

이 요리가 이렇게 맛있다라는 주장을 내세운다기보다는 이 요리가 이렇게 적법한 순서와 그에 걸맞는 절제됨을 보여준다 이런 느낌이다. 미각을 사로잡는 맛은 아니지만 뜯어보면 흐름 상 반드시 필요한 그런 맛.

셀러리가 들어간 마리나라 소스는 적당한 단맛을 보유하고 있어 조화를 망치지 않았다. 셀러리향은 왜 맡아도 그렇게 익숙하면서 한 번에 인지가 안될까? 그 짙고 짙은 구조 쩌는 풀향.

​식사가 흘러감에 따라 준비된 로제를 담기 위한 글라스가 세팅이 되었다. 존예보스

​캐년로드의 화이트 진판델(Canyon Road White Zinfandel).

뭐 너무 유명한 로제라 구구절절 설명하기 뭐하지만... 8%의 알콜로 아주 보드랍고 순수한 캔디같으면서 수분 가득한 붉은 봄여름과일의 달콤한 향기가 후각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와인이다. 아메리칸 스윗하트가 자주 바를 어여쁜 블러쉬 같은 색상.

술을 못하는 동행을 위해 준비한 와인인데, 복잡한 바롤로보다는 이렇게 간단한 매력쟁이가 더 좋을 밤도 인생에서 무수히 많다. 유명한 하우스용 로제는 이유가 있지요.

​반건조 가자미와 미나리를 곁들인 오일 파스타.
평소 간이 약한 파스타는 입에 안 댄다. 그 부족한 간의 공허를 차고 넘치게 채우는 뛰어난 향이 있지 않는 이상.

후자가 바로 빌라드라비노의 오일 파스타라 내가 늘 아끼지 않고 칭찬을 하는게 트루.

​잘게 다져진 미나리는 마치 네기도로덮밥의 실파처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 산뜻한 계절의 향을 미나리가 아니면 누가 낼까? 그리고 애호박 너는 오일파스타에 필수로 들어가야해 이거 누가 법안 발의해야해.

텁텁하게 건조된 가자미는 두 가지 역할을 해주었는데.. 첫 번째로 파스타에 훌륭한 stock을 선사했고, 두 번째로는 추석식사를 쌩까는 집안에서 태어난 나에게 뭔가 내가 먹지 못한 명절음식이 대신 되어준 듯한 각별함을 주었다. 정통 이탈리안을 고집하는 구성은 아니니까 이런 느낌 드는건 어색한 일은 아님.

​자연스레 먹어지는 링귀네와 솜사탕같으면서 얼음같이 시원한 미국 로제의 조합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긍정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추석 음식 못 챙겨먹었다니까 직접 만드신 또르뗄리니를 만두 대신 주신 셰프님 ㅠㅠㅠ 따흑 따흐흑 우리 엄마아빠보다 스윗해....

고르곤졸라가 살짝 가미된 크림이지만 나는 내가 아무리 치즈 포비아라도 이렇게 사랑이 담긴 음식을 거절하는 사람은 아니다. 또 나는 동시에 맛이 없을 음식은 절대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니 억지로 먹었다는 뜻 역시 절대로 아니겠다.

푹 익은 렌즈콩과 진한 크림소스, 단단하고 조그맣게 뭉쳐져 속이 꽉 채워진 이태리 만두를 그 미미한 블루치즈 때문에 맛없다고 평한다면 내가 바보지. 종종 말하지만 나는 이탈리안에 있어서 치즈의 필요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잘 먹었습니다.​

​청포도와 청사과의 푸른 상큼함을 가진 셔벗으로 중간 정산. 그간 매번 같은 셔벗만 먹었는데 여름 맞이 메뉴가 바뀌었었나보다.

​세컨도를 위해 미리 오픈해놓는 피노누아를 가져왔다.
때마침 켜주시는 양초...
분위기는 쩔었지만 오가는 대화는 험악했지. 여성 인권과 게이 인권의 상관성에 대해 격한 논의를 했고 존나 싸웠다가 화해하던 시간^^~~~~~

그 날의 피노누아는 뉴질랜드 말보로의 생클레어 파이오니어 블록 14 피노누아였는데, (Saint Clair Pioneer Block 14 Pinot noir) 요즘 말보로 와인 쫌 많이 마신다.

레드와인이 가질 수 있는 밸런스가 좋은 편이고, 뒤섞인 향기의 볼륨이 훌륭함. 피노누아치고 날아갈 듯한 걸음걸이는 아니지만 품종의 특징에 눈이 먼 바보는 되고 싶지 않으니 기존 경험과는 조금 색달랐다라는 표현으로 퉁쳐보겠다. 매우 갠츈한 신대륙 피노누아.

​이런 피노누아에 이렇게 육향 진한 갈비살 스테이크라니 이건 운명이야.

갈비살은 눈감고 씹어도 갈비살임을 알 수 있다. 이빨이 박히는 순간 느낄 수 있는... 육질에 맺힌 모든 입자에서 약간의 반동이 오는그런 쫀쫀함이 있지.

단호박퓨레 덕분에 더욱 무거운 맛이 우러났고, 와인의 성능은 무르익었다고한다.

다만 나는 2016년 가을에 먹었던 스테이크가 더 기억에 남는다. 갈빗살은 자체의 무게감 때문에, 순수 맛의 영역과 다소 충돌하는 경향이 있다.

​역시 나를 제외한 접시에 두텁게 올라가는 치즈.

​휴 치악산 출신 큰송이는 더 이상 칭찬하기에 손가락 아프다 관두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자의로 먹은 생버섯이 버섯입니다. 소설옥에서 굽는 큰송이도 좋지만 역시 최고는 트러플 소금에 찍어먹는 이 것

피날레는 티라미슈.
치즈 농도가 진해서 나는 패스.

셰프님은 먼저 퇴근하셨고 우리는 소믈리에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거친 언사에 투머치인포메이션 테러를 당하셨을텐데 너무 날 것의 대화 매번 제송하구여. 점심이든 저녁이든 올해 안으로 한번쯤 혼자 다시 가지 않을까 싶다.

언제나 사랑스럽고 보물같은 콜키지 프리 레스토랑이지만, 소설옥도 그렇고 빌라드라비노의 잔잔하게 진행중인 변화들이 살짝 걱정되긴한다. 세상의 모든 변화가 나에게 맞춰지길 바라는 것이 욕심인 것을 알기에 무리해서 글로 상세히 남기지는 않겠지만, 첫눈에 반한 연인이 언제나 그 첫 모습 그대로 남기를 바라는 심정인 것 같기도.

변화는 언제나 모 아니면 도, 발전 아니면 후퇴다.
타협 많은 식당은 발걸음에 망설임을 얹는다.

와인에 대한 사랑과 음식을 이루는 모든 요소에 대한 진실함과 정직한 판단, 정확한 소신이 있는 모습을 매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