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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서울대입구] 맨프롬오키나와, 새로운 사시미 Bar의 멋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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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크리스마스 정각에 인사 드립니다. 오늘따라 밤이 춥고 또 깊네요. 다들 성탄절 잘 맞으셨나요? 짙은 스타우트와 포터 몇 병을 옆에 두고 글을 적고 있는데 노곤하면서도 편안한 불빛이 아른거립니다. 몇 가지 새로 소개 드릴 식당들과 술이 있는데 차근차근 진행하겠습니다. 올해는 그냥 미루기만 해서 늘 죄송합니다.


올해 발견한 식당 중 제일 나를 흥분시키는 곳은 샤로수길에 위치한 맨 프롬 오키나와(Man from Okinawa)라는 곳일 것이다.

새로운 식당을 발견하는 방법은 몇 개 없다. 지인의 추천(Off/Online)이나 검색이나 매거진 열람 등등. 그 와중에 조금 참신한 방법으로 나는 이곳을 알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의 둘러보기 메뉴를 구경하던 중에 아이디가 Sababouzushi인 사람이 있었는데 아니 사바보우즈시를 아이디로 쓰는 인간이 있단 말이야? 일본인인가? 하면서 자세히 보았더니 샤로수길에서 사시미바를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이름부터 사바보우즈시로 짓고 가게를 영업하는 사람이라면 닉값은 할 것 같아서 구미가 당겼다.

올해 초에 오픈해서 아직 포털에 자료도 없는 그런 작은 사시미 bar였다. 

사시미바는 무엇일까. 이자카야보다는 조금 더 신뢰가 가는 어감에 갓포보다는 더 재미있어보였다. 대표 이타마에분의 글 쓰시는 솜씨가 내 취향이라 그냥 바로 방문헀다. 올해 가을쯤에.. 한두달 지난 이야기다보니까 기억이 흐릿하네요. 적당히 담백하게 쓸게요.

​공사장 맞은 편에 위치한 가게.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서울대입구란 싸구려 음식점들만 가득했는데 올해부터 봉천동에 미식 개혁이 일어나는 조짐이 보였다. 이에 대한 부분 역시 차근차근 원스텝투스텝 스텝바이스텝.

​적당한 사이즈의 가게 내부를 훝어보니 처음에는 월넛톤의 목재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여러번 오다보니 좋아졌다.

8명 정도 착석 가능한 다찌석과 3-4인용 테이블이 두개 정도 있다. 예약은 7시까지만 받으시는듯. 젋은 남성분들 4-5명이서 매니징과 요리를 담당하는 것 같았다. Team이라는 개념으로 운영하시는 듯. 일반적인 스시야의 서열구조와는 조금 분위기가 달랐던 것 같고.

​메뉴판은 찍지 못해서 바로 오토시 사진으로 이어졌는데, 상당히 저렴하다. 뭐 학생들 기준으로는 비싸겠지만.. 청담동 갓포집 기준으로 생각했을때 Reasonable하다. 인당 5만원 정도면 충분할?(나는 아님)

참깨소스를 무화과 위에 올린 오토시. 존재 자체가 진득하고 들큰하며 목구멍 속에서 헤엄치는 텍스쳐.

​발베니 10년산으로 시작.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Just the two of us가 이때 나왔는데 선곡 리스트를 보면 그냥 이타마에분들 노동요를 뺑뺑이 돌리는 것 같았다. 하우스 재즈나 시부야 그런 계통 스타일들이 많이 나오는 듯.

​우니 플레이트.. 얼마였지? 3-4만원 정도 했던 것 같구만.

단새우와 멕시코산 우니, 참깨소스와 아보카도, 아부리 우니가 함께 나왔다.

각각의 구성부터 살펴보자. ​한국에서 성게를 먹다보면 한국산, 북해도산, 캘리포니아 또는 캐나다산, 멕시코산을 주로 만나게 되는데.. 대충 여름에는 한국일본꺼 먹고 가을에는 멕시코산 먹고 겨울에는 북아메리카쪽으로 먹는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다.

사실 대학생의 성지인 샤로수길에 생긴 일식집이다보니 재료에 대한 기대는 안했는데 (사실 어느 정도 무시하고 들어왔다) 기대 이상으로 관리되는 모습을 보여줘서 가슴에 큰 충격을 받음. 뭐지? 이 제대로 된 가게는..

​고마소스가 어김없이 나와줬는데 이 떄 방문 이후로도 계속 존재감을 보여줬다. 이젠 맨프롬오키나와 하면 참깨향이 살풋 코와 목구멍에 맴돌 정도로.. 부드럽게 잘 익은 아보카도와 궁합은 좋다. 설익어서 시큼하거나 아쉽지 않아 만족했던 아보카도.

​빼곡히 들어찬 단맛이 자신만만하게 느껴졌던 단새우 여러 마리도 담겨있었다.

우니와 아마에비의 조합에 대한 자신감이 확 와닿았다. 내가 이렇게 내어주는데 니가 설마 맛을 못 느끼겠어? 이런 느낌.

​살짝 불질한 우니는 와사비와 함께 조금 담겨있다. 아부리까지 해줬으니 취향대로 처먹어라 이런 따뜻한 배려.

​맛은.. 사진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조금 더 사족을 보태보자면 단맛이 위아래로 미친듯이 휘몰아치는 눅진한 성게향에 진한 참깨가 깃들고 아마에비와 아보카도는 '말해서 뭐해?'라는 뚱한 태도로 일관하는데 그 맛들이 참 좋다. 달콤함이 강한데 단단한 노리(김)의 맛이 어느정도 억제를 해준다.

​다이끼리도 한 잔 주문합니다.

이 날은 친구 한 명과 함께했지롱. 구질구질한 래디컬 페미 인생..

​감자샐러드와 박고지도 먹고 싶어서 주문했는데 포션의 볼륨이 상당하다.

기술의 영역은 자제하면서 투박하게 던져주는 플레이팅이 너무 마음에 든다 지금도 떠올리면 마음이 두근거릴 정도로..

​집에서 하라고 하면 존나 빡쳐서 집어던져버리는 박고지 졸임.

박고지 졸여주시는 분들한테 머리 숙여 인사 드리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도록 합시당..

​역시 노리에 감자샐러드를 듬뿍 떠서 박고지 한 점과 올려 먹는다.

약간의 머스터드가 들어간(맞나? 기억 재기) 으깬 감자는 크리미하게 녹아 내리는데, 간이 달달하게 된 편이다. 뭉근하게 씹히는 박고지 역시 달달한데 그나마 실파가 제법 들어있어서 맛의 스펙트럼이 좀 더 풍성하게 변했다. 맨 프롬 오키나와 음식들이 전반적으로 단 편인데 나는 뭐 다 괜찮게 먹은 듯..

​마시던 위스키가 다 떨어졌으니 야마모토 퓨어블랙 하나 주문합니다. 쥰마이 긴조 등급인데 스파클링이 약하게 들어있었다. 다이긴죠급 사케를 먹어보지 못한 무지렁이에게 이 정도면 박수치면서 기분 좋게 마실법한. 9만원이었나욤.

청주에서 맡을 수 있는 진한 과일향기와 잘 지어진 밥 냄새, 편안하게 잘 깎여내려간 알콜의 부담스러움.. 뭐랄까 못생긴 남자들만 출근길에 보다가 우연히 존잘모델남의 코트자락에 치인 느낌.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운수가 좋다.

​이것을 먹으려고 사실 왔지. 사바보우즈시. 한국어로는 고등어봉초밥.

히카리모노 덕후에게 존재만으로 그저 감사한..

이타마에분들이 다 젊으셨는데 젊은 남자들의 힘찬 감정과 새로운 시작에서 나오는 산뜻함이 맛으로 우러나온다. 실제 혀로 느끼는 감각과 마음으로 받아들여지는 제3의 허구적인 감각이 다른데.. 앞서 말한 것들은 당연히 후자의 경우이고.

전자의 감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정도면 준수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냥 그 존재만으로도 이미 사랑스러운 맛인데.. 방금 준수하다고 서술한 것처럼 거기서 약간 더 합격점을 느낀다면 그냥 나는 이미 사랑에 빠진걸거야. 시메사바의 숙성 정도와 샤리의 간 등등에서 크게 어색한 부분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케 금방 다 비웠고요. 한라산 들어갑니다.

​가츠산도도 한 접시 주문.

​식부관의 식빵을 쓰신다는데, 이 날 가츠의 간이 강해서 조금 아쉬웠다. 간이 강한 덕분에 와사비와는 최고의 시너지가 발생되었지만은.. 고기의 맛보다는 튀김옷과 양념, 식빵의 존재가 너무 커서 먹으면서 부담이랄까. 육류를 느끼기 힘드니 탄수화물만으로는 버겁고 질리네요.

​사시미 모리아와세도 한 판 주문했다.

원래는 각 사시미 하나하나 다 짚으면서 포스팅하려고 했으나ㅎ.ㅎ 힘드네요.

그냥.. 다 일정 수준 이상이었다라는 말로 퉁치겠다. 이번만 이러는거니까 봐주셈

​매니저님이 모든 메뉴 다 드시는거냐고 물어보셨는데 어느정도 맞는 말인듯.

친구는 일이 있어서 먼저 자리를 뜨고 나 혼자 남아서 자작하고. 서비스로 주신 왕새우튀김.. 정성과 아량이 감개무량했습니다.

튀김 반죽의 농도도 알맞아 참 맛있게도 튀겨진 왕새우였다. 입 안에서 바삭하게 굴러다니는 튀김의 작은 조각과 맛의 일부들.

​화장실 존나 힙함

화장실 하나만으로도 이태원 씹어먹음.

​첫 방문의 기억이 좋아 1-2주 뒤에 퇴근 후 혼술하러 방문했다.

사바보우즈시는 그날 마스타님 컨디션이 안 좋아 안된다고해서 지라시스시나 한 대접 주문했다.

​우니와 아보카도, 단새우, 실파. 지난번 먹었던 우니플레이트의 구성과 다르지 않아 익숙했다.

다만 밥의 간이 약간 핀트가 안 맞았던 기억이 나는데 형편없어서 박차고 나갈 정도는 아니고 위에 올려진 고명들이 워낙 출중해서 비긴 듯한 심정으로 술잔을 기울였던 것 같음..

​맛 없으면 김에 싸먹으면 맛있고

맛 있으면 김에 싸먹으면 더 맛있다.

​혼술은 라이트하게.

소주병 깨는 것보다는 하이볼이 낫다.

당도 잘 맞춰놓은 하이볼 두세잔 연거푸 주문하면서 혼자 신나게 외로움을 즐겼음.

​감자샐러드도 다시 주문하고.. 혼자에게 양은 많았지만 먹고 싶으면 시켜서 먹고 남겨야지 별 수 있나.

세상에서 제일 싫은게 양 많을 것 같다고 주문 안하는 사람이당..

​달콤달콤해.

갑자기 내가 지난 번에 놓고갔다고 카드 하나를 전해주셨다.

잘 안 쓰는 카드라서 놓고간지도 몰랐는데 다들 상냥하심.

2시간 정도 마시고 먹고 혼자 앉아있었는데 하몽과 무화과를 서비스로 주셨다.

볶은 아몬드향이 나도록 꼬들하게 반건조한 하몽의 꼬리함이 오늘따라 그립네. 잘 먹고 집에 돌아감.


사실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아 어젯밤에도 이 곳에 있었다.

여러모로 맛있는 음식들이 늘 감사하고..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는 곳이라 블로그에 꼭 소개는 하고 싶었는데 그간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이제야 조심조심 적는다. 추억도 되지 못하고 날아가버린 기억이 많아 자세한 맛을 서술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밀린 숙제를 한 기분이라 미묘미묘행복행복.

'맛이 있는' 일식요리에 술 한잔 하려면 청담동이나 논현동, 가끔은 홍대 부근으로 각 잡고 유명한 갓포요리집들을 가야했었는데 샤로수길에 이런 곳이라니. 샤로수길이라니. 서울대입구라니. 내가 밤마다 고개를 넘어가던 그 동네라니. 아, 좋다. 식상한 뺑뺑이들에서 벗어난 새로운 가게를 사랑하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식당들은 뛰어난 맛만 있는 곳보다는 주로 요리사들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지는 곳들이다.

나는 그런 곳에서 행복을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