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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이대/대현동] 일본 골목의 스시집 같던 후쿠스시 그리고 올 겨울 첫 번째 후토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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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은 때론 아주 편하다. 어느 식당의 어느 메뉴를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그 음식이라는 존재가 반가운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뿌빳퐁커리를 좋아한다. 만약 내가 파전이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술집에서 뜬금없이 메뉴판에 뿌빳퐁커리를 써놓았다면 나는 원래의 목적인 파전과 예기치 않은 수확인 뿌빳퐁커리를 둘 다 시킨다는 이야기다. 사전조사나 소문에 관계없이 주문하게 되는 음식은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을 것이다.

올해는 외식보다는 방에서 술을 조금씩 자주 마시며 자급자족을 했다.

그래서 작년에 비해 꽂힌 음식이 없긴한데, 2017년이 끝나가는 와중 후토마끼와 개연성 없는 사랑에 빠졌다. 프라하에서 한국인이 쥐어준 캘리포니아롤을 먹고 그 다음 날 다시 찾아가서 먹고 그렇게 롤을 좋아하게 되었고 서양놈들의 캘리포니아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스시야의 후토마끼라는 존재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깨닫게 된지는 1년이 좀 넘었는데 요즘 자꾸 꿈에 나오는게 후토마끼 안 먹으면 큰일나겠다 싶었다.

다만 오마카세에서 겨우 1점, 앵콜하면 2점을 먹을 수 있는 후토마끼를 사랑하게 되어봤자 얼마나 만족스럽겠나. 코우지의 경우 포장도 해주지만 그런 스시야는 많지는 않다. 올 겨울은 작년에 라구투어를 했듯 후토마끼를 조지자는 일념으로 나름대로 서울에서 후토마끼를 먹을 수 있는 업장들을 리스트업 해서 하나씩 찾아가보는 중이다. 

​네이버 검색옵션으로 후토마끼를 걸고 2017년 1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나오는 모든 후토마끼 글을 보았다. 스시야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갓포요리집이나 기타 일식 전문점인데, 이화여대 근처의 저가스시집이 튀어나온 것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일단 가까우니 제일 먼저 찾아가보자 결심을 하고 카톡으로 예약을 했다.

"저 혹시 후토마끼 그때 파시나요? 그거 먹으려고 예약해서요."

"네 저희 후토마끼 드셔보셨나요? 그걸로 준비해드릴까요?"

"넿ㅎㅎㅎㅎㅎ"

​내부는 좁고 사람이 많았다. 이미 후토마끼를 예약한 손님을 위해 대뜸 선결제를 하시려는 것을 만류하며 메뉴판을 더 보았다. 순간 일본 여러 지역에서 먹었던 서민용 에도마에 스시집의 영어메뉴판이 떠올랐다. 폰트와 어종 설명까지 진짜 완전 일본스럽다. 일본 여행에서 스시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듯. 좀 더 친절해진 부분은 알러지가(정신적인 알러지 포함) 있을 수 있는 재료를 따로 표기해놓은 것.

아보카도롤도 맛있어보였는데, 우선 후토마끼를 먹으러 온 것이니 패스했다.

친구가 없는 혼밥러에게 많은 메뉴는 힘이 듭니다.

​후토마끼 한 줄에 1.9만원. 무려 참다랑어 초밥보다 1천원이 비싸다.

​스시집에서 세트 무시하는게 취미고 단품으로 안 시키면 병 나는 사람이라서.. 단품 메뉴판을 보면서 계란초밥 두 조각과 연어뱃살 초밥 한 조각을 골랐다. 세밀한 백원 단위 가격 측정까지 아무리 봐도 일본 스시집 구성이랑 존똑이란 말이지. 날치알 마끼나 농어 뱃살 이런거 적어놓는 스시가게 한국에 흔치않다.

​가게가 만석이라 맞은 편에 있는 작은 공간으로 안내를 받았다. 띠용..

카운터도 없고 직원도 없고 그냥 빈 공간에 카운터 갖다놓은 곳임. 손님은 나와.. 어떤 여남 커플 딱 둘..

​끄트머리에 앉아 머플러를 벗는데 재밌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카운터 너머로 보이는 사장님의 개인적인 낡은 냉장고와 포근한 남색시트의 간이 침대, 갓 빨아놓은 듯한 두꺼운 후드집업과 몇 가지 식물들이 자연스럽게 완벽한 주거공간을 형성하며 자리하고 있었다. 순간 주인의 취향대로 아담하게 꾸며진 작은 원룸을 구경하는 듯해서 웃음이 나왔다.

​고개를 흔드는 스모선수와 이상하게 맞추어진 시계와 작은 피규어가 올려져있다.

​소심하게 주문한 계란초밥 두 점과 연어뱃살 한 점을 작은 접시 위에 올려진 상태로 받았다.

​계란초밥의 경우는.. 두툼하면서도 물이 많은 스타일. 다시물이 많이 들어가서 묽은 질감이라 단맛이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가벼운 질감으로 구워진 계란을 깨물면 다시향의 즙이 나오면서 밥알을 적신다. 

그나저나 초밥을 입에 넣자마자 깜짝 놀란 점은, 샤리가 너무 질다. 나는 샤리의 당도를 제일 신경쓰는 편이라 점도는 큰 신경 안쓰는데도 깜짝 놀랄 정도.. 엉성하게 쥔 듯한 모양새에 질다니.. 텍스트로 나열하니 최악으로 보이는데 맛이 없지는 않다. 고급지고 우아한 샤리는 못 되어도 저가스시만의 기준은 또 따로 있잖은가. 달고 질고, 담백한 계란네타가 조금 위안이 되는 듯한 의외의 긍정적 효과가..

​연어뱃살의 경우는 저가형 스시집에서 나올 수 있는 베스트라고 볼 수 있겠다.

둥글게 말아서 샤리 위에 쥐어올린 모양새가 특이하다. 집 앞에 있다면 아마 일주일에 두번 정도는 이 곳의 연어뱃살을 찾아 먹을 것 같다.

​대망의 후토마끼 한 줄이 나왔는데, 예상보다 푸짐해서 살짝 감동한.

​아보카도, 아까미, 연어, 생새우, 타마고, 오이, 단무지, 날치알 등이 한데 말아져있다. 

후토마끼보다는 집에서 말아낸 김밥에 어울리는 듯한 말음새.

투박하게 썰어놓은 오이와 섬세하지 못한 단무지의 쌈마이스러움이 나를 반겼다.

시원시원하게 칼질 해놓은 재료들과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은 샤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이 있었다고 말하면 너무 신빙성 없으려나. 확실한 것은 이렇게 편안한 점이 잘 와닿았다는 것. 맛있는 것들을 한데 뭉쳐놓았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의 차이가 갈리는 은근히 어려운 존재가 후토마끼인데, 실패작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기분 좋음.

서걱서걱 씹히는 절인 오이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감히 어느 스시야에서 이렇게 대충 오이를 집어넣을 수 있을까. 하다못해 명동 신세계본점의 호무랑 (본점보다는 격이 좀 떨어지는)에서 새우튀김롤을 시켜도 채썬 오이가 나오는데. 이렇게 마구 말아낸 롤 형태의 초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길거리의 서민용 스시가게 밖에 없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나쁘지 않은 평을 주고 싶다.


재방문의사.. 놀랍게도 있음. 물론 언젠가 이대 근처에 볼일이 있을 때, 후토마끼를 먹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