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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압구정] 프렌치를 먹어야겠다면 여길 가자, 비스트로 드 욘트빌(Bistro De Yountv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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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프렌치를 먹어본 기억은 많지 않다. 

파인다이닝의 경우는 해외에서 종종 겪었고, 서울에서 기억나는 프렌치는 태번38과 꼼모아, 라플랑끄, 비스트로 루즈 등등이 있는데 대부분이 정석 프렌치 다이닝보다는 좀 더 편안한 비스트로에 가깝지만 가격은 존나게 비싼st 였지. 클래식한 프렌치는 방콕에서 두어번 경험한게 마지막이다.

그 중 라플랑끄는 돌이켜보면 정말 다시 갈 곳이 못 된다. 가격이 싸다고 쳐. 근데 싸다고 맛 없는 것을 먹기엔 내 하루가 아깝다. 질긴 스테이크와 누린내 나는 닭고기 등등을 먹자고 그 이해 안가는 난이도의 예약과정과 웨이팅을 감내하고 싶지 않다. 싸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면 차라리 맥도날드 세트를 먹는게 낫다.

라플랑끄를 가느니 비스트로 드 욘트빌을 가는게 낫다는 심정으로 적는 오늘의 리뷰.

꼼모아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도 있지만, 코스의 형식을 갖춘 것은 비스트로 드 욘트빌이니 나름 프렌치다이닝을 입문하려는 여행객과 현지인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메뉴 구성이나 가격을 보면 어느정도 비스트로는 맞는데 분위기는 그 이상으로 훌륭함.

​​12월의 어느날 친구가 없어서 혼자 점심식사를 하러 방문했다. 직장인이 금요일 오후 반차를 내고 식사를 할 때 동행할 수 있는 친구는 누구에게나 그리 많지 않다라는 점을 생각하며 정신승리를 해본다. 사실 친구 씨발 있든말든 상관없다 오버워치에 친구 많음.

압구정에 간겸 스시코우지에서 후토마끼를 포장하고 털레털레 걸어와서 착석했다.

욘트빌만의 예쁜 접시와 정성스럽게 돌돌 말린 냅킨을 보면 기분이 좋그든요.

1인 손님에게는 인싸들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허용되지 않는다. 흰 벽 옆에 딱 붙어 있는 2인용 테이블에 앉으니 주방쪽이나 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시선들이 사라지니 편하게 핸드폰하면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격식 있는 식사를 할 때 폰질하는건 예의가 아니라고 많이들 생각하니까.. 조용한데 숨어서 폰으로 놀면서 밥 먹는 편이 좋음.

런치는 4코스 기본 4.8만원부터 시작.

좀 더 간단한 구성은 3.9만원이다. 그런데 9천원 차이인데 굳이.. 그냥 4코스로 함.

​프렌치 어니언 수프 / 버건디 달팽이 / 통후추 채끝 등심 스테이크 / 바바오럼으로 주문 고.

​욘트빌 와인리스트를 읽으면 흐뭇해짐. 프랑스 와인이 대부분인데 그렇다고 버건디나 보르도만 갖다놓은 것도 아니고, 글라스로 판매하는 화이트의 경우 루아르 지역의 와인도 있다. 디저트의 경우 쏘떼른과 포트 등을 글래스로 판매도 한다. 

소믈리에 직원분이 간단한 설명을 해주시고..뱅상 지라댕의 부르고뉴급 피노누아를  한 잔 주문했다.

2가지 이상의 와인을 글라스로 파는 식당은 옳다. 남으면 버려야하는 리스크를 감수하고도 고객에게 선택지를 주겠다는 자신감과 아량.

​런치 영업 마지막 타임이라 그런지 옆 테이블도 비어있고 전반적으로 여유로운 모습.

그렇다고 평일이라고 워크인하면 안된다. 가급적 예약을 하고 방문합시다.

​바디감 적은 피노누아를 위해 둥그런 볼을 가진 와인잔 하나가 준비되었다.

식기세척기를 돌려도 깨지지 않는 강인함을 가진.. 업소용 디자인.

​그와 동시에 식전빵과 참치 리예뜨, 버터가 각각의 그릇에 담겨 같이 나온다.

​버터에는 트라몬티나 나이프가 준비되었는데, 라귀올에 비하면 한참 격은 떨어지지만 대충 그럴싸한 모양새와 성능.

생버터는 앙버터라도 먹지 않는 나의 소신주의 덕분에 반쯤 잘려진 두툼한 버터 한 조각은 그대로 외면 당했다고 한다. 

​사진으로만 보면 촘촘한 마들렌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식전빵은 겉을 단단할 정도로 바삭하게 구워낸 볼륨있는 빵이다. 식전빵 하나하나까지도 평에 포함되는 파인다이닝급 식당에 오면 가급적 양념이 더해진 빵을 먹고 싶지만.. 아직까지 서울서 그런 빵은 만나본 적 없다. 올리브 처트니나 살라미, 오일을 얹어 먹는 정도가 최대치.

​이 작은 종지에 담긴 존재가 욘트빌의 명물 참치 리예뜨다. 

분명 캔참치스러움이 존재하는데 불쾌한 쇠비린내나 역한 잡내는 빠진 하나의 요리 수준이다. 익숙한 캔참치의 느낌에 질척거리는 올리브오일, 적당한 후추가 융단이 깔리듯 부드럽게 맛을 내는데.. 가격대 낮은 프렌치 식당의 참치캔이라고 낮잡아볼 수준은 못 된다. 

여러모로 뜯어봤을 때 좋은 음식이라는 뜻은 결코 못 되지만, 싫어할 수 없는 맛이다.

싫어할 수 없는 맛은 때론 맛있다는 표현보다 강한 자극이 되어주는 것임을 명심하자.

​빵을 조금 뜯어 참치를 나이프로 가득 떠올려 같이 먹으면, 단단한 빵에 이빨이 박히는 그 깊은 크레바스 같은 과정에 참치 풍미가 촉촉하게 스며든다. 재료에 대한 업장 측 가성비를 간과한 손님 입장에서는 다소 과분할 수 있는 식전행사를 참치라는 재료를 사용해 친절히 레벨을 낮춰준 배려로 다가온다. 

​뱅상 지라댕 부르고뉴급 피노누아 2015.

와인을 가져오신 분이 홀 응대도 겸임하는 소믈리에님인지 그냥 직원인지는 모르겠다.

​딱 전형적인 버건디 출신 피노누아의 실키함과 조신한 남성스러움이 느껴졌다. (남성분들.. 어디가서 부드러운 와인보고 여성스럽다고 하지 맙시다 요즘 여자들 얼마나 기쎄고 폭력적인데여 이런 말 함부로 여자 앞에서 했다가 기분이라도 상하게 하면 어쩔려고 그러들시는지?? 잘못하다가 대가리 깨집니다 뚝배기 망치로 맞아요;; 사당역 화장실에서 칼 맞기 싫으면 말조심합시다) 

내가 좋아하는 한 셰프님은 이 사진을 보고 이런 평을 해주셨다.

"이거 좋쵸. 뭐랄까 약속으로 옷장 뒤져서 옷 입다가 취소되서 혼자 혼술하는데 감성은 오지는 기분이랄까'

​추운 겨울날 하얀 식탁보가 깔려있는 프랑스 식당에서 눈 앞에 뜨끈한 양파수프가 올려지는 광경을 보는 심정. 양파수프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뭔가 약간의 설레임을 주는 장면인 것은 확실하다. 양파수프란 존재가 낯선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이국적인 매력일지.

어니언 수프라고 하면 느낌이 안 살고, 양파 수프라고 해줘야함. 

어릴 떄 읽던 세계소설에서 양파를 넣은 수프라는 대목에 밑줄을 쳐가며 좋아라했었다. 양파와 감자를 넣어 끓인 수프, 매콤한 완두콩 스튜, 이렇게 이국적이고 따끈한 식사가 종이 위에 글자로 펼쳐지는 것들을 좋아했다. 유치원 때부터 밥을 책으로 배웠다. 

​그뤼에르 치즈 한장을 얹어 오븐에 구워낸 수프. 태번38의 양파수프는 치즈로 뚜껑을 만들었었는데, 그쪽은 좀 더 클래식한 연출인 것 같고.

​진득하고 단단한 그뤼에르 치즈를 무시하고 밑에서 절절 끓는 수프를 한 숟갈 떠서 향기를 맡았다.

잘 볶아져 캐러멜처럼 변한 양파의 단향과 시큼함이 시작과 끝을 담당하고 뜨거운 국물 안에 녹아든 약간의 향신료 -어쩌면 소량의 와인과 하늘에서 땅으로 뚝 떨어진 듯한 깊이감이다. 감칠맛은 덤. 

치즈가 양파 수프 고유의 맛에 크게 개입한다면 그 수프는 삼류다. 같은 그릇에 담겨진 예의 정도만 차리는 향기의 터치, 이 정도가 적절. 치즈 잔뜩 묻은 수프를 먹고 싶다면 감자수프에 체다나 넣는게 낫지. 이상 치즈포비아의 혐오발언이었습니다.

빵 한 덩어리를 뚝 떼어 바닥에 고인 국물에 적셔 스푼으로 떠먹어도 좋다. 양파수프라는게 어디 격식차리면서 병아리 눈물만큼 먹는 음식이었던가. 

​그 다음 엔트리로는 부르고뉴 달팽이. 

껍질 까는 기구도 주긴 주는데, 소설옥에서 백골뱅이 오조오억번 까먹은 짬바가 있으니 조심스레 포크로 달팽이육을 돌려 꺼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뜨겁고 맨들맨들한 달팽이 껍질을 살짝 집어들어 포크로 살을 푹 쑤신 뒤 살살 들어올리면 줄줄 흐르는 육즙과 바질과 버터가 묻은 살코기를 맛 볼 수 있다.

아쉽게도 흙맛이 덜 빠져서 즐겁게 먹기엔 무리가 있었음을.

서걱거리는 달팽이살을 씹기보단 진한 풀향의 뜨거운 오일과 육즙을 호로록 마시는게 더 행복했다.

​통후추를 잔뜩 얹고 나온 채끝 등심 스테이크와 그 친구들. 

메뉴 설명으로는 후추크림이라고 하는데 크림.. 어디있는지. 스테이크 밑바닥의 저 grease를 보고 크림이 들어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고.. 맛도 크림은 아니고.. 지금 돌이켜보니 의문이다.

​포들포들 매쉬드 포테이트가 함께 나온다.

만약 없었더라면 추가금을 지불해서라도 곁들였을 것. 으깬 감자 없이 서양식으로 구운 고기를 먹기엔 아쉬움이 크다.

으깬 감자의 경우 버터나 크림을 지나치게 넣어 헤비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욘트빌의 으깬 감자는 나대지 않는 맛. 스테이크를 떠받들어주는 맛. 오버워치에서 젠야타 포지션 맛.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뒤에서 꾸준히 딜도 넣고 힐도 넣는 그런 느낌. 

​스테이크와 동일한 방식으로 팬프라이한 브뤼셀 스프라우트와 새송이, 당근이 가니쉬로 나온다. 

당 근 무 엇

당근은 언급하지 않겠다. 한적한 유럽 시골식당에서 대충 만들어주는 푸짐한 샐러드 느낌을 내기 위해 당근채를 넣었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다. 당근향은 이 접시 위의 어떤 것에 어울리는거죠?

브뤼셀 스프라우트는 쌉싸름한 기본 존재에 기름 구이라는 옷을 입혀내 한결 나은 맛을 보여준다. 생으로 먹는건 정말 사람이 못할 짓이고. 새송이는 훌륭한 맛. 적당하게 구워진 버섯몸통의 우아하게 터지는 향을 사랑한다.

​미디움 레어로 구워낸 스테이크 단면. 후추로 잔뜩 덮여진 탓에 고기결의 방향을 가늠할 수 없어서 역방향으로 잘랐더니 결이 곱지 않게 나왔다. 어쨌거나 진달래색으로 더할 나위 없는 굽기.. 집에서 만들어내기엔 부족한 숙련도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난이도.

한 입 먹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스테이크가 정말 어디서 돈 받고 팔 수 있는 수준인데 도대체 서울의 많은 스테이크 하우스들은 왜 그 모양 그 꼬라지일까. 

스테이크 전문이랍시고 인당 십몇만원씩 걷어가면서 맛 떨어지는 고깃덩이를 내놓는 곳들을 가느니 차라리 요리 잘하는 양식당에서 작은 포션의 스테이크를 주문하는 것이 더 좋은 삶이다. 

박수갈채를 덧붙일 정도로 그리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고기의 숙성도와 고르게 분포된 지방, 완벽한 소금간, 톡톡 터지듯 씹히는 첫 느낌 정도면 실망스럽지 않은 스테이크라고 생각이 된다. 과일향이 나는 후추 믹스는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싱그러움.

​천천히 고기를 다 잘라 먹고 나니 후식으로는 바바오 럼이 준비되었다.

케이크 한조각에 럼을 뿌렸다니 알콜중독자에게 너무 좋은.. 것.. 아닌지.

​흠 잡을 생각은 잘 안 드는 드립커피도 시원하게 한 잔. 

식후에 드립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식당 좋은 식당.

​우리나라 술떡처럼 얼기설기 엮인 텍스쳐의 케이크 단면에 피어오른 빈 공간 안으로 럼이 충분하게 배어들었다.

휘핑크림 역시 적당한 당도로 부드럽게 쳐져 구름 같은 달콤함을 준다. 휘핑크림이라는게 삐끗하면 너무나도 역한 것이라 조심조심 떠먹어보았더니 발랄하게 확 피어오르는 맛, 마지막으로 차분하게 흐드러지는 油의 흐름이 만족스러웠다.

​꼭 레터스 투 줄리엣의 남주 같은 디저트네. 초반부 말고 사랑에 빠진 다음의 남자 주인공.

마들렌은 서비스로 하나 나온다.

메종엠오 마들렌 드셔본 분은 기대 마시고 그냥 위장 여백 메꾼다는 느낌으로 한 입 하시면 될 듯.


2시간 정도의 여유를 갖고 진행된 멋진 불란서식 점심식사의 기억을 끌어안고 신년을 맞았다.

주말은 최소 2-3주 전에 예약해야할만큼 예약도 나름 빡세고 압구정이라는 전반적으로 좀 재미없는 동네에 있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의지가 다시 한 번 닿으면 또 가겠다란 생각이 드는 곳. 셰프가 뉘신진 모르겠는데 본인의 식당을 사랑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그냥 먹어보니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