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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일상

지치고 병든 상태로 떠났던 강릉 여행 Review(스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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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는 오랜만이네.
생존신고 겸 이번에 다녀온 강릉 여행 후기를 작성해보려고 한다. 살다보면 힘든 날들이 잦게 찾아온다. (여러가지 일 때문에) 하도 가슴이 답답하여 충동적으로 불쑥 강릉행 KTX 기차표를 끊고, 호텔을 예약했다. 가볍게 다녀오려 했지만, 사진이 거의 마흔장이나 되는 것을 보며 역시 나에게 미니멀리즘은 그림의 떡이라는 사실을 재발견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점심쯤 강릉에 도착한 나는 곧장 버드나무 브루어리로 향했다. 기차에서 샌드위치를 두 개나 먹은 까닭에 배가 그리 고프지는 않았지만, 여행지에서는 배가 불러도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버드나무 브루어리에 들어간 순간 왠지 통나무 오두막에 들어온 듯한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유리창으로는 햇살이 들어왔으며, 그에 대조되는 그림자들이 가게 안을 채우고 있었다.

우선 위스키 배럴 흑마늘 스트롱 에일을 주문했는데, 벨기에의 스트롱 에일에 길들여진 나는 상당히 마일드한 맛에 살짝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맥주는 맛이 없는 맥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세 바닥을 비워버린.

간단히 배를 채우려고 주문한 풀드포크 버거. 그러나 전혀 안 간단해보이는 비주얼. 대왕만한 번 사이즈와 감자 하나에서 이 정도 길이가 나온다고?를 외치게 되는 감자튀김의 길이... 나는 모닝빵 수준을 기대했으니 놀랄 수 밖에 없다.

맛은 그저 그랬다. 고수와 찢긴 돼지고기의 조합은 좋았으나, 소스가 과하게 질척이는 느낌이었다. 감자튀김은 직접 감자의 껍질을 벗겨 자르고 튀긴 듯했다. 감자튀김은 맛없없.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주문한 음식은 뒷전으로 하고, 맥주가 동이 났으니 새로운 맥주를 주문했다.

입에 넣는 순간 혀 위에 독한 플로럴향이 평평하게 깔리는 더블홉 IPA가 내 취향에 딱 들어맞았다. 별개로 식사를 하는 내내 뒤에서 어떤 여성분이 어린 아들과 끊임없이 재잘대고 계셨다. 친근한 말투와 담백한 솔직함으로 아들을 친구처럼 대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것만으로도 이 양조장에 온 보상을 받은 듯한 느낌이다.

맥주가 숙성되고 있는 현장.
원래 이런거 안 찍는데 블로그 올리려고 대충 찍어봤다. 정말 맥락 없는 사족이다.

그리고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민트라는 와인샵에 방문했다. 주말에 짧게만 오픈하는 곳인데, 내추럴 와인이 많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다녀옴. 사장님은 내가 내추럴 와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반가워하셨다. 내가 관심 있어한 와인들은 대부분 6-7만원 대였는데, 사장님은 난처한 표정으로 가격대가 좀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장님.. 아닙니다... 지난주 토요일에 서울에서 18만원 주고 내추럴 와인 사먹었어요..

마음에 드는 와인 세 병 구입 후 호텔로 이동했다.

내가 예약한 세인트존스 호텔은 체크인이 오후 네시였다. 완전 개념 없는 시간 아닌지? 비용을 지불하고 얼리 체크인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왠지 안 될 것 같아서 관뒀다.

어쨌든 정책이 그러하다니 체크인 번호표를 뽑고 호텔 앞 바다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백사장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내 정면에 두었다. 바다는 참으로 넓구나. 바닷물에 잠겨버리고 싶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찾아온 바닷가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방랑하고 유영하고 싶었다.

체크인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오후 세시 삼십분부터 진행이 되었다. 나는 13층에 위치한 디럭스 더블룸을 배정 받았다.

룸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신축 호텔이라 깔끔한 점이 마음에 들었고, 침대 매트리스와 베개가 과하지 않은 푹신함을 갖고 있어서 좋았다. 혼자 묵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침대였다. 잘생기고 조신한 연하남과 왔더라면 좋았을텐데ㅜ

카드 꽂이 옆에 있었던 금연 표시.
난 폐암으로 죽으려나?
담배를 끊으려고 해봐도 1일 버티고 포기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차라리 술을 1주일 끊는 것이 더 쉬웠었다.

호텔 2주년 기념이라고 준 웰컴.. 웰컴...

떡과 쿠키..
떡은 제대로 익지 않았고 쿠키는 문화센터 베이킹클래스 맛이었다...

발코니 문을 열자 2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예약한 오션뷰가 눈 앞에 펼쳐졌다. 아련하게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제주도 라마다 호텔에서 보았던 짙푸른 탑동 바다가 오버랩 되었다. 그래, 나는 이 바다를 보기 위해 이 호텔로 온 것이야.

발코니에 나가서 찍어본 강릉의 바다. 에메랄드빛과 코발트 블루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이다.

침대 위로 민트에서 사온 와인 세 병을 내팽겨쳤다.
두 개는 오렌지 와인, 한 병은 화이트.
요새 와인 직구 안 한지 꽤 되었는데 슬슬 다시 시작해야겠다.

호텔에서 좀 쉬다가 식사를 하러 강릉항까지 걷기로 했다. 경포에서 강릉항 까지는 약 한시간 정도 걸어야한다.

그 간극을 이어주는 것은 바다를 옆에 낀 소나무 길이다. 적당히 빽빽한 소나무들이 하나의 산책로를 형성하고 있었다. 어린 소나무와 장성한 소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얼핏 비친다.

주인 없는 의자들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의자에 앉아볼걸, 왜 이제 와서 이런 후회를 하는지.

저녁 먹으러 도착한 곳은 강릉항에 위치한 미트컬쳐. 해외에서 경력을 쌓고 오신 셰프님이 강릉에 차린 육류 위주의 식당인데, 생각보다 내 마음에 와닿는 메뉴가 없었다. 이름처럼 스테이크가 시그니처일테지만, 셰프란 모든 요리에 진심으로 대해야하는 입장이니 모든 메뉴에 정성이 동일하게 들어갔으리라.

우선 추천 받은 골뱅이 에스까르고와 스테이크 리조또를 시켰다. 남자 사장님이 주방을 담당하고 여자 사장님이 홀을 담당하시는 듯.

목이 말라 주문한 까바 한 병.
데일리급으로 훌륭한 향기와 힘찬 탄산을 갖고 있었다. 레드와 화이트를 통 틀어 간만에 마셔본 구조감 좋은 스패니쉬 와인이었다.

요새 주량이 줄어서 혼자 마시기에 벅차려나 했었는데, 존나 기우였음을,,,~~~~!!!

파슬리버터와 기름으로 덮여있는 골뱅이 에스까르고가 먼저 나왔다. 나는 야들야들한 달팽이를 선호하지만, 한국인의 정서에는 아무래도 골뱅이가 맞겠지. 충분히 오일리하고 버터의 풍미가 괜찮았다.

 이렇게 플레이트에 홈이 있고 그 사이에 골뱅이를 넣고 구운 것이라 마지막에 남는 파슬리버터와 버터기름은 식전빵을 찢어 그 위에 올려 먹으면 된다. 사실 나는 빵에 찍어먹는게 이 요리의 제2막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스테이크 리조또 되시겠다.
올라간 스테이크의 양이 꽤나 많아서 다 먹지는 못했으나, 정직한 고기의 맛이었다. 사실 나는 기교을 많이 부린 맛의 스테이크를 선호하지만, 개인의 기호를 떠나서 생각했을 때 이 곳의 스테이트 굽는 스킬은 평균 이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밑에 깔려있는 버섯구이와 트러플향이 가미된 크림 리조또는 구색이 밥과 반찬이니 그 합이 별로일 수가 없는.

배는 부르지만 뭔가 아쉬워서..
아 글쓰는 도중 옆 팀 직원들 열 나서 다들 대피하고 난리났네

아무튼 아쉬워서 클램차우더를 주문했다. 와인도 절반쯤 남았으니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 아니 국물 아니 수프가 먹고 싶어서...

딱 내가 먹고 싶었던 크리미하고 바다의 향이 풍성하게 깔린 맛이었다. 뜨거운 액체에 의해 기세가 한 풀 꺾인 크루통의 바삭함,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뜨끈한 수프.

감귤 소르베로 만들어진 후식까지 감사히 먹었습니다.
친절하신 사장님과 아늑한 분위기는 좋은데 2인용 테이블이 너무 작고 테이블 간격이 좁은게 흠. 뭔가 음식마다 대단한 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네에 이런 식당이 있다면 많이 사랑해줄 것 같은 곳.

택시를 타고 호텔에 와서 몸을 씻고 안락의자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침대에 앉아 음악을 틀었다. 이 날은 왠지 줄담배즈 노래가 땡기더라.

하던 코딩 마저 해야해서 여기까지 쓰고 일 다 마치고 이어 쓸겁니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