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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일상

친구의 자살을 알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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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가 죽었다.

10월 27일, 아무 계획도 없이 그저 침대에서만 흘려보낼 일요일이었다. 정오가 넘어 느즈막히 일어나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옥상에 담배를 태우러 올라갔다. 날씨는 썩 좋았고, 코 앞에 보이는 수락산 봉우리를 보는데 갑자기 연우가 생각이 났다. 연우는 영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전날에 시험을 쳤을 것이었다. 지지난주였나, 그 애와 술을 옴팡지게 먹고 내가 그 모든 비용을 지불했던 댓가로 연우는 본인의 시험이 끝난 뒤 우리가 좋아하던 일식을 사겠다고 했었다. 우리는 술 취향이 비슷했다. 비싼 와인, 좋은 위스키, 바텐더의 태도 등등 꽤나 까다로운 기준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때문에 너를 만날 때마다 나가는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 날에도 아마 80만원 가량을 썼던 것 같았다. 돈이 조금, 아니 그냥 아까웠어서 한동안 연우를 보면 안되겠다라고 다른 친구에게 털어놓기도 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연우 시험 끝났을텐데 연락을 해볼까? 알아서 연락하려나?


그 생각은 의미없이 빠르게 날 스쳐갔고, 이내 나는 다른 생각을 하다 방에 내려와서 다시 드러누웠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휴대폰에 한 문자를 수신 받았다. <제목없음>이라고 시작되는 MMS였다. 평소에도 수도 없이 받는 광고성 문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보낸 이의 휴대폰 번호가 이상했다. 010으로 시작하는 누군가의 개인번호였다. 궁금증이 일어난 까닭에 그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그 사람을 나를 유진언니라고 불렀다. 난 유진이가 아닌데?하면서 문자를 읽기 시작했다. 평소에 속독을 하는 버릇탓에 단어의 배열 순서를 무시하고 눈에 들어오는 단어 몇개부터 읽어들였다. 연우, 하늘나라. 이렇게 딱 두 가지 단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무엇일까? 천천히 다시 읽었다. 나에게 문자를 보낸 사람은 연우의 여동생이었다. 연우가 하늘나라로 갔으니 와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너무 잔인한 말이지만 연우의 죽음을 머리속에 입력하자마자 드는 생각은 당연히 자살이겠구나라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누군가 악의적인 장난을 칠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까. 연우의 여동생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굵고 앳된 성인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그, 문자 받고 연락을 드렸는데요."


'네."


"연우가 죽었다구요?"


"네."


"어쩌다가요?"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연우의 남동생이었다. 연우는 평소에 남동생 얘기는 딱히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는 살면서 나와 맞닿을 사람이 아니었다. 외자 이름을 가졌던 그의 목소리는 아주 여상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담담한 목소리였다. 곧이어 나는 장례식장 위치를 받아내었고, 그 날은 안 감을 작정이었던 머리를 감고 나갈 채비를 했다. 생각보다 슬프지는 않았다. 그저 무슨 죽음이 이렇게 쉽지 이상하다란 생각을 하며 담배를 한 대 더 태운게 전부였다. 그 다음에는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친구가 죽었다, 자살했는데 믿기지가 않는다라는 내용을 남겼다. 타인에게 나에게 닥친 이 부고를 알리면 좀 슬퍼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도 딱히 슬프지도, 눈물이 나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꽤 괜찮았다.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해야했더라 절 몇 번하는 거였지? 부의금 까먹지 말아야겠다 등의 당연한 고민을 안고 삼성동 병원 앞에 도착하니 병원건물의 불은 온통 꺼져있었다. 어디로 가야하나 둘러보니 장례식장은 저 구석에 있었다. 용도가 용도인만큼 일부러 구석에 지었겠구나라는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8호실로 다가가는데 그 울음소리는 더 커졌고, 더 생생해졌다. 엉거주춤 빈소 앞에 다가가니 한 중년 여성분이 나에게 바로 다가왔다. 나는 그녀가 연우의 어머님을 알면서도 혹시 연우 어머니시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나에게 연우의 친구냐고 물어봤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리는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연우의 죽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예의상 가져온 가방 하나를 발치에 툭 떨어트리고 빈소에 들어갔다. 영정 사진은 연우의 셀카였다. 생전 처음 보는 사진이었다. 실물보다 너무 예쁘게 나와서 그런지 영정 사진을 보니 다시금 그녀의 죽음이 안 믿기기 시작했다. 어색하게 큰 절을 하고 상에 앉으니 어머님이 나오셨다. 무슨 말을 꺼냈었더라? 아마도 처음 만나는 사이에서 응당 필요할 인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머님의 손을 붙들고 울면서 말했다. 어머님, 저는 다 너무 원망스러워요. 연우가 평소에 힘들다고 했던 그런 것들이요. 걔 남자친구도 원망스럽고 그냥 다요. 그 뒤로 어머님은 연우가 요즘 어땠는지, 남자친구랑 어땠는지를 물어보시다가 연우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금요일 새벽에 연우로부터 카톡 하나를 받으셨다고 했다. 내용인즉 이랬다. 나 시험 못 봐도 엄마 나 사랑해? 어머님은 주무시느라 카톡을 확인 못하셨다고 했다. 나는 그 때 피자집에서 할로윈을 조금 이르게 기념하며 술을 왕창 마시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에 어머님은 그제서야 내용을 확인하고 대수롭지 않게, 하지만 조금 이상하다란 생각은 가지며 응 그럼 당연히 사랑하지라는 답변을 보냈다. 나는 그 때 부모님이 사주는 소갈비를 처먹고 있었다. 그 날, 그러니까 토요일은 연우의 여동생의 생일이었다. 어머님과 동생은 생일이라 밥도 먹고, 영화도 봤는데 연우한테 답장이 없어서 연우의 집에 찾아갔다. 연우는 죽어있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연우 어머님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이상했다. 연우가 말하던 연우의 어머님은 나름 고상하신 분이었다. 연우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만 봐도 되게 세련된 분이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 만난 연우의 어머니는 사진 속의 멋진 옷이 아닌 검은색 자켓과 낡은 청바지를 입고 계셨다. 너무 추레한 모습이었고 비참해보였다. 가만히 앉아서 좀 더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연우의 친구 두 명이 도착했다. 유진이라는 친구와 연우의 친한 오빠였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연우로부터 여러 번 말을 들어 알고 있었다. 연우는 종종 나에게 그 두명에게 서운했던 점을 토로하곤 했다. 그들이 내 옆에 앉자 식사가 차려졌고, 우리는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어색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진씨는 나에게 생각보다 질문을 많이 했다. 연우가 이러이러했는데 들었어요? 연우가 이랬던거 알죠? 내가 아는 이야기도 있었고 모르던 이야기도 있었다. 내가 모르는 내용을 알고 있는 그녀에게 조금은 질투를 했다. 나는 연우가 떡볶이를 제일 좋아하는지도 몰랐었다. 우린 늘 좋은 것 비싼 것만 먹어왔으니까. 연우에겐 내가 제일 친한 친구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나와 달리 그 둘은 최근 연우가 어땠는지 다소 가볍게 얘기도 나누고 그렇게 슬퍼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들만의 애도 방법이 있을 것이고 그 당시에 어떤 심정이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괜찮아보였던 그들이 미웠던 것은 사실이다. 발인 장소가 수원이라는 말을 듣고 참석에 난색을 표한 점도 미웠고 다음 날 중요한 일이 있어서 발인에 못 올 것 같다는 말도 미웠다. 그들이 연우를 추억하는 말을 들으며 묵묵히 종이그릇에 나온 쌀밥과 편육을 조금 집어먹고 회사에 가봐야겠다는 거짓말을 하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팀장에게 다음 날의 오전반차를 메일로 알린 뒤 해방촌에서 오랜만에 뵙는 분을 만나 술을 마시러 갔다. 할로윈을 맞아 분장한 사람들이 시끄럽게 락 공연을 하고 있었다. 아, 나는 그 때 정말 괜찮았다. 눈물도 장례식장에서 흘린 것이 전부였고 술집에서 목놓아 울거나 연우와의 추억을 끝도 없이 풀어놓거나 그런 애도를 전혀 안해도 되었으니까. 그래서 죄책감이 들었다. 생각보다 멀쩡하네, 내가 이래도 되나. 슬퍼해야할 것 같은데. 그렇게 늦은 새벽에 집에 도착해서 잠도 잘 잤던 것 같다.


다음 날 알람소리에 잠이 깼다. 그 알람은 당연히 내가 아는 알람이었다. 나는 연우의 집에서 종종 자고가곤 했다. 남의 집에서 숙박을 꺼려하는 편이지만 연우의 침대는 너무나도 넓고 편했다. 연우 집에서도 아침에 그 똑같은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했었다. 나는 괜찮은 것이 아니었다. 단지 연우의 죽음이 와닿지 않았던 것이었다. 알람을 종료할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부랴부랴 집을 나왔다. 도연이는, 그러니까 연우의 여동생은 연우의 발인이 오전 10시라고 했었다. 그래서 오전 10시까지만 도착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참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는데 도연이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지금 입관한다고, 마지막 얼굴 볼거면 지금 와야한다고.. 하지만 나는 연우의 마지막 얼굴을 볼 용기조차 없었고, 시간도 없었다. 다시 지하철에 앉아있는 내 자신으로 돌아오니 또 현실이 생각나서 눈물이 질금질금 나왔다. 주변 사람들을 의식해서 괜히 감기에 걸린 척을 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유가족들은 전부 입관에 참석한 상황이라 연우의 친척 한 명만이 빈소에 남아있었다. 그는 나에게 입관하는데 가보겠냐 물었지만 나는 괜찮다고 답했다. 그렇게 또 잠시 앉아있었다. 누군가 엉엉 울면서 복도를 걸어왔다. 아니, 울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알던 울음의 정의보다 더 처절하고 짙었고 날 것이었는데 그걸 울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연우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날 끌어안고 울면서 왜 이제 왔니, 일찍 왔어야지라고 나를 향해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그건 내가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내 죄책감이었다. 내가 묻어놨던 걸 어머님이 부득불 파헤쳐서 나에게 다시 던져준 것이었다. 나는 그저 죄송하다란 말만 반복했다. 울만큼 울 것 같은데, 부둥켜안고 있을만큼 있었던 것 같은데 도통 날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아,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하지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참 나였다. 연우의 마지막 얼굴은 파랬다고 한다. 제 명을 다 못 살고 죽어서 그랬을 것이다.


자, 화장장으로 이동할 시간이 왔다. 연우의 사진을 앞에 놓고 제사를 올렸다. 나는 살면서 제사라곤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절을 하는 법도 모른다. 그래서 뒤에 숨어있었는데 연우 어머니가 오셔서 연우에게 술 한 잔 올리라고 하셨다. 옆에 서있던 친척분에게 묻고 물어 겨우 술을 올렸다. 나중에 알고보니 올리기 전에 세 번 돌려서 올리더라. 미안했다 미리 연습이라도 해볼걸. 시간을 보니 오전 10시 반이었다. 오전 반차를 사용했으니 오후 한시반경에는 회사에 도착해야했었다. 시간이 촉박하지만 그래도 화장하는 것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인 수지에 있는 화장장으로 연우 어머니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의 내부는 심하게 어지럽혀져 있었다. 이상하지 연우야. 네 말만 들었을 때는 너희 어머님 되게 깔끔하시고 주변 정돈 잘 하셨을 것 같은데 내가 보니까 아니더라...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우리는 연우가 이랬고 저랬고에 대해 말을 했으며 중간중간 내가 그 카톡에 답장을 했었더라면, 내가 혹시 안부전화라도 해봤더라면 자책도 하고 눈물도 삼켰다. 하지만 연우가 좋은 곳에 가서 알아서 잘 살고 있을 것이라는 의견은 우리 모두에게 변함 없었다. 그러고도 남을 년이었다. 50분 가량을 달려 차에서 내리니 완연한 가을날씨였다. 날이 너무 좋았다. 너 보내주는 날, 너 묻는 날이 말이다.


화장장 안으로 들어와서 연우의 가족들은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절차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해야하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경조사는 대표적으로 딱 두가지가 있다. 결혼식과 장례식이다. 결혼식은 수많은 사전 연습을 하고 준비를 해서 당일이 되면 다들 척척 알아서 한다. 하지만 연우의 장례식에서는 모두가 미숙했다. 딸이 죽었고 언니가 죽었고 친구가 죽었는데 뭘 해야할지 뭘 할 수 있을지 몰라서 다들 우왕좌왕하며 시키는 대로만 해야했다. 그 사이사이에 눈물만 줄줄 흘리는게 우리가 하는 능동적 선택의 전부였다. 모든게 멋쩍었으며 낯설었다. 곧 이어 연우가 담긴 관이 들어오고, 간단한 예를 갖춘 뒤에 연우가 불에 타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았다. 네가 왜 불에 타야하고 나는 왜 이런 네 모습을 지켜봐야하는건지 이해가 안 갔다. 피곤해서 짝다리를 짚어가며 서있다가 연우의 가족들에게 내가 감히 이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가 미안해서 잠깐 밖에 나갔다 돌아왔는데 연우의 아버지가 주저앉아 계셨다. 그걸 보고 바로 다시 나갔다. 화장장 건물 1층 가운데에는 분수가 있었다. 그 곳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친구가 죽었는데 지금 화장을 하고 있는데 내가 여기 있어야할 것 같아서 오후에 못 갈 것 같다 아예 휴가를 써야할 것 같다고 말하자 팀장은 음식물을 씹는 소리를 내며 응 그래, 근데 남은 연차는 있니?라고 물었다. 딱히 그녀의 말에 눈치를 주려한 것은 아니지만 하필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가 오열하기 시작했다. 팀장은 당황하더니 상냥한 목소리로 친구 마지막 보내주고 오라고 말 해주었다. 뭐 어차피 남은 연차라곤 그 날 오전에 썼던 반차가 전부였으니 나로써는 반나절을 꽁으로 쉰 셈이니 이득이었다. 꼬깃꼬깃해진 휴지 뭉치로 얼굴을 닦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입에 연우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우리 유가족이 아닌 것 같은데 연우 얘기를 왜 하지 싶었는데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로비에 있는 스크린에는 현재 화장중인 고인들의 명단이 떠 있었는데, 딱 봐도 전부 나이가 많을법한 이름들이었다. 김진목, 박승배... 그 가운데에 있던 지연우라는 이름만 유독 예뻤다. 어쩐지 화장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상복을 입고도 차분해보였다. 그들에겐 예견된 비극이었을 것이다. 우리만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모든 정황이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다.


텅 빈 로비에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해보았다. 살면서 힘든 적이 쉴 새 없이 찾아왔었다. 스무살에는 그 당시의 애인과 헤어지고 그 때가 제일 슬펐었다. 작년에는 진지하게 자살 계획을 세웠었고, 그 직전에는 길거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다가 담배를 사왔는데 하필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어서 담뱃불이 안 붙던게 제일 슬펐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 이런 슬픔도 있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생각해보니 죽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보인다. 하지만 나에겐 그저 간접적인 비극이었다. 지금 내 친구의 자살도 세상에는 그리 다가올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 외로웠다. 그래서 인터넷에 친구 자살을 검색했다. 그런데 온통 뉴스만 나오고 나같은 사람들의 흔적은 없었다. 이상했다. 다들 죽는데 왜 내 친구만 불쌍한건지, 나만 이런 일 겪는거 아닐텐데 왜 나만 괴로운 것 같은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건지.


화장이 끝나고 연우는 작은 상자에 담겼다. 나무에 묻어준다고 했다. 연우 어머니의 차에 연우 부모님, 남동생, 여동생 그리고 내가 올라탔다. 그들은 연우를 묻을 나무 비용 이야기를 했다. 종류에 따라 오백만원에서 육백만원이 된다고 했다. 그 돈을 현금으로 뽑아가야했다. 연우아버지는 연우가 유학가면 학비로 쓸 2천만원을 따로 모아놨었다고 말하셨다. 연우는 아마도 그 사실을 몰랐을 것이었다. 나에게 본인이 집안에 금전적으로 무리를 주는 것 같다고 유학도 부모님에겐 부담되지 않겠냐고 마지막 보았을 때 털어놓았으니까. 눈물을 빠르게 훌쩍훌쩍 삼키시는 연우 아버지를 보며 이게 사람새끼가 할 짓인지 싶었다. 연우가 미친년인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미친년이었는지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


수목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졸았다 깨기를 반복했다. 눈을 떠보면 멍하고 모든 것이 괜찮았다. 연우의 가족들에게 콧물 삼키는 소리를 들려주기 민망해서 그저 계속 잠에 들기만을 노력했다. 수목장에 도착하니 연우의 남자친구가 와있었다. 나는 그를 모르는 척 했다. 좋은 남자같다는 친척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면 그거 아니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기에. 그렇게 뒤에서 딴청을 부리다가 연우를 묻어줄 때가 와서 나무 앞으로 갔는데 그제서야 연우의 남자친구에게 아는 체를 했다. 빨개진 그의 눈을 보니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의 손을 잡고 훌쩍거렸다. 나는 그와 한국어로 이야기를 처음 해봤다. 모든게 서툴었다. 그의 한국어도, 나의 애도도. 그는 장미꽃 한 다발을 사와서 내려놓았다. 연우는 평소에 나에게 남자친구에게 꽃 한 송이 받아보는게 소원이라고 말했었다. 그는 왜 이제서야, 왜 내 친구가 나무가 되어야지만 장미꽃을 줄 수 있었던 걸까. 나중에 듣기로는 그가 연우의 장례식장에 와서 자기 때문이라고 자기가 죽였다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우리는 연우의 뼛가루를 흙으로 덮고 그 위에 술을 뿌렸다. 시험 끝나고 같이 먹으러 가려던 술을 나는 그녀의 제삿상에 올리고 그녀의 무덤에 뿌렸다. 가슴이 미어져서 울고 있는 나를 보며 연우의 이모는 연우가 친구 가슴에 대못을 박고 떠난다고 했다. 그 말이 맞았다. 연우는 내 가슴에 못을 박고, 나에게 차마 사람으로써 할 수 없는 짓을 했다. 우리는 평소에 꽤나 시니컬한 태도로 세상을 대해왔었다. 자살? 그거 하고 싶으면 하는거지. 오죽 힘들었으면 자살하겠니. 그거 다 존중해줘야한다. 누군가 먼저 이렇게 말을 꺼내면 다른 한 명은 네 말이 맞다라고 일관했다.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나. 내가 멍청했다. 자살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는걸 미치도록 실감했다. 자살은 불법으로 정해야한다고 생각되었다. 연우는 내 인생을 구렁텅이로 처박고 갔다. 사실 나는 연우를 이해할 수 있다. 갑자기 불안하고 갑자기 무서웠을 것이다. 연우가 오죽 힘들었으면 그렇게 스스로를 죽였을까. 나는 너무나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가 도무지 가지 않는다. 왜? 도대체 왜? 평소 자살예방캠페인을 보면 자살자들은 미리 징조를 보인다고 했다. 주변 정리나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 고민상담 등등.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다. 어떤 새끼가 쓴 건지는 몰라도 이 모든게 매뉴얼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내 생각과, 내 상식에 위배되도 한참 위배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연우가 죽은게 맞았다. 아닌 것 같았는데 연우는 죽은게 맞았던 것이었다. 나무가 된 연우를 보았다. 나무가 예쁜게 아마 연우가 와서 골라도 동일한 나무를 골랐을 것 같았다. 그 애는 평소에도 안목이 어찌나 좋았는지, 내가 쇼핑할 때도 따라와서 늘 최고의 것만 골라주던 애였다. 그래서 내심 안심 비슷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장례를 마치고 근처 설렁탕집에서 연우의 가족들과 남자친구과 식사를 했다. 그 와중에도 배가 고파서 도가니탕 국물에 깍두기 국물을 야무지게 부어먹었다. 아마 연우가 보면 질색했을 것이다. 누군가 연우가 순댓국을 좋아했는지 물었다. 나도 몰랐고 남자친구도 몰랐고 동생들도 모르더라. 왜 몰랐을까? 살아있었을 때 한 번 물어나봤었어야했는데.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고 있었는데 연우 어머님이 연우의 남자친구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내심 야속했다. 어머니, 제가 더 친했고 제가 더 오래봤고 연우는 얘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우가 평소에 내 얘기는 안 하고 비탈리 얘기만 했었나싶었다. 그래서 연우도 또 미웠다. 소주가 달았다. 어머님이 하은아 오늘 마시고 죽자라고 하셨을 때는 반갑기까지 했었다. 아, 어머님도 나도 담담하게 잘 버텨왔던 것 같았는데, 갑자기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연우의 동생들은 차분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달랬다. 나는 따라서 울면서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어머니, 사실 제가 연우 이번에 시험치는거 꼭 잘 치라고 했어요. 답답해서 그랬어요. 연우가 지금이라도 취직을 해야하나 고민을 했는데 제가 그랬어요. 너 지금 할 수 있는거라곤 시험 붙어서 영국 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그 때 괜찮다, 다 괜찮다고 시험 못 쳐도 괜찮다라고 해줬어야했어요. 연우가 본가에 내려갈지말지 고민할 때, 제가 시험 끝나지 전까지는 혼자 집중하는게 나을 거라고 그랬어요. 나를 탓하는 내 울음에 연우의 부모님은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다. 아마 긍정의 침묵이 아니었을까 두려웠다. 그제서야 연우의 이모님이 날 위로하셨다. 누구나 다 그런 생각했을거라고. 사실 나도 알고 있다. 연우는 내가 죽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연우가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연우의 죽음은 운명이 아니다. 세상에는 운명이 없다. 연우의 운명이 그럴리가 없으니까.


나는 연우의 남자친구의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차 안에서 우리는 담배를 피우며 연우가 생전에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연우에 대한 불만도 가감없이 말했다. 그와 단둘이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국어로 이야기했더라면 내가 너무 처절했으리라. 그가 내 슬픔을 헤아리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자신을 원망하냐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난 그저 네가 걱정된다고했다. 사실 그가 나보다는 더 노련할 것이다. 그는 나보다 열살이 더 많으니까. 내가 이런걸 감당하기 비교적 너무 어린 것이었다. 이 글을 통해 고백하자면 실은 그가 내 생각보다 슬퍼하지 않을까 고민이 된다. 내 생각보다 연우를 덜 사랑했더라면 어쩌지, 연우 잊으면 어쩌지.. 그에게는 그 편이 낫겠지만 나는 그저 친구의 죽음앞에서 조금 더 이기적일뿐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눈물 없이 담담히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시 연락하며 지내기로 굳게 다짐을 한 뒤 헤어졌다. 집에 돌아오니 내 퉁퉁 부은 눈을 보고 엄마는 쌍커풀 수술 여부를 물어왔다. 어이가 없었지만 뜬금없이 친구의 자살을 의심하기보다는 그 편이 더 자연스러운 추론이었겠지. 나는 대꾸없이 방으로 휙 들어왔으나 심상치않음을 깨닫고 따라들어온 엄마에게 모든 것을 담백하게 털어놓았다. 엄마, 친구 묻어주고 왔어. 자살했어. 오늘 화장하고 나무에 묻어줬어. 기겁하는 엄마에게 난 다소 쌀쌀맞게 대하며 축객령을 내렸다. 돌아서니 또 새로운 후회가 찾아왔다. 엄마가 죽으면 나 또 후회할텐데 미리 잘해줘야할텐데. 설움에 울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그 다음날, 연우를 보낸 뒤에 맞는 세 번째 아침이 왔다. 눈을 뜨니 온통 연우 생각만 났다. 예전에는 가슴이 아프다란 말이 단지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진짜 흉부가 망치로 치는듯한 슬픔을 겪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은 슬픔이 뱃속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라는 표현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슬픔이란게 뱃 속에서 꿀렁꿀렁 뒤틀리고 있었다. 회사에 출근하니 눈물은 하염없이 나는데 일은 많았지만 여느 때처럼 딴 짓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생각해보면 난 원래 이랬는데 친구를 잃은 슬픔을 핑계삼아 마음대로 살고 싶은게 아닐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리고 사실 내가 연우의 죽음을 이렇게까지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 역시 빠지지 않았다. 연우는 그저 내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인연을 맺은지 2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고, 내 가족도 아니다.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끝일 일을 나는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여기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또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가 깨달았다. 나는 그냥 연우가 보고싶은 것이었다. 배고프면 밥을 먹으면 되고 졸리면 자면 되는데 연우가 보고싶어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그 애는 만나자마자 늘 나에게 본인 이야기를 한 두 시간씩 얘기했다. 지겨울 법도 하지만 어찌나 말을 재미있게하는지, 그 애가 입을 열기만하면 나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듣곤했다. 그리고 가만히 날 응시하며 눈을 끔뻑거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지금도 연우를 떠올리면 그 모습만 생각난다. 그래, 너는 아직도 나에게 생생하다.


연우가 그립기만하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나는 연우가 미치도록 밉다. 저승으로 가지 말고 이승에 남아서 내가 어떻게 지옥처럼 사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면 한다. 야 넌 지 혼자만 편하려고 갔구나, 내 심정 한 번이라도 헤아려봤는지, 시험 그거 별 것도 아닌데 왜 죽은건지.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말은 내가 평소에 손가락질하던 의견들 중 하나였다. 살다보면 남들의 생각이 언젠가는 내 생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 일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연우가 밉다. 그와 동시에 두렵다. 연우가 어쩌면 내가 너무 미워서 일부러 죽은게 아닐지, 내 인생 이렇게 망가지는거 보고 싶어서 그런게 아닐지, 내가 연우에게 뭔가 상처를 준게 내 예상보다 많지 않을지. 머리로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연우가 그럴리 없다라는 퍼즐 한 조각은 내가 가진 다른 퍼즐들과 아다리가 들어맞지 않았다. 반면에 연우가 일부러 자살했다라는 생각은 그것만으로도 온전하고 완성된 퍼즐로 느껴질 뿐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비약이나 자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멀쩡히 살아갈 것이란 것을 안다. 괜찮아질거란 것을 안다. 실제로도 다른 삶의 풍파를 겪을 때도 그 생각 하나만으로 잘 버텨왔다. 하지만 전혀 와닿지 않을뿐이다. 연우가 나에게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마지막 선물로 주고 간 것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을 하러 나왔는데 모든 것이 똑같았다. 차라리 연우가 죽었다고 해가 서쪽에서 뜨고 낮과 밤이 바뀐다거나 하면 그 때는 걔의 죽음을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연우가 날 떠나기 전의 일상과 다를 바가 없어서 문득 괜찮아지곤 한다. 그러다가 연우가 내 머리속에 들어오면 나는 그 애를 내쫓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미리 생각을 그만두는 연습을 해놨어야했다. 주제넘게 우울을 받아들이려고만 노력해왔던게 후회가 되었다. 괜찮다. 지금이라도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런 일이 또 안 생긴다는 보장이 없는데 그 때엔 도움이 되겠지. 아니다. 괜찮지 않다. 25년 내 평생동안 이런 비극 없이 잘 살아왔는데, 그러면 남은 몇십년도 평탄하게 살 수 있었지 않을까. 이런 비극이 나에게 찾아온다면 기적도 한 번쯤은 일어나야하는거 아닐까. 로또는 왜 안되는지...


나는 세상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슬픔을 공유하길 바란다. 나에겐 그것이 위로다. 또한 누군가에게 내 이 글이 위로가 될 것임을 안다. 그 어떤 조언도 해줄 말이 없다. 그저 내가 이렇게 괴롭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이 글은 연우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에게 바친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친구와 애인을 잃은 사람들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