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루한 일상

4년만에 다시 찾아온 프라하, 그 첫번째 이야기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5개월전 이탈리아를 2주간 다녀왔다.

그 곳에서 인연이 닿은 애인과 함께 지난주에 프라하와 애인의 집이 있는 베네치아에 7일간 다녀왔다.

3월달에 갔었던 피렌체/베네치아에 대한 이야기는 블로그에 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양이 너무 방대하기도 하고, 이제와서 세세히 그 장소들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머가리도 이젠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훌륭한 레스토랑들을 방문했었기에, 피렌체/베네치아의 괜찮은 식당 및 술집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댓글 달아주시면 답글로 리스트 올려드리겠습니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가볍게 프라하에서 시작한 첫날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 합니다.

인천 -> 모스크바 -> 프라하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아에로플로트 러시안 항공을 이용했는데 기내식은 끔찍 그 자체였다.

기내식이 기대된다는 사람들은 결국 그 맛이 아닌 여행에 대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담은 향취를 기대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여행에 딱히 낭만도 없고 기대감도 없어서 기내식을 먹는 순간순간이 고역일뿐이다.

흰밥과 기내식 특유의 짜고 되직한 소스에 버무린 작은 닭조각들, 초코파이, 오이 풋내나는 샐러드.

이 크림소스를 끼얹은 대구와 묵직한 크림과 물을 섞어 으깨낸 감자는...

느끼함 그 자체라 입에 대지도 않고 숙면을 선택했다.

모스크바에 도착하니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마더로씨아의 날씨는 여름의 한파와도 같았다.

이 때 경유시간이 2시간 40분 남짓이었는데 비행기에서 하차해서 환승게이트에 도착하니 시간이 딱 맞았다. 모스크바 공항은 사람도 정말 많고 절차에 시간도 많이 소요될뿐만 아니라 내부도 엄청나게 넓어서 경유시간이 빠듯하다면 그 비행기는 버려야한다.

귀국길에는 경유시간이 1시간 반이었는데 프라하에서 한 번, 모스크바에서 한 번 비행기를 놓칠뻔했다.

모스크바에서는 발권을 다시 받아야해서 체크인 카운터까지 나갔다 왔는데, 보딩타임 5분전에 출국 심사대에 줄을 서있어야했다. 그냥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아 씨발... 내일 연차 쓰고 그냥 비행기 새로 끊어야겠다 카드 한도 얼마 남았더라라는 심정으로 나름 평온하게 기다렸더니 요행이 일어나서 보딩타임을 5분 넘겨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프라하 하벨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우버를 타고 우리가 묵을 The president hotel Prague에 내려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애인을 만났다.

그남은 나를 보자마자 어쩔줄 몰라하며 이마를 만지작거리다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나를 포옹했다. 그리웠어, Missed you, Mi manchi등의 애절한 대화가 오갔으나 나는 반가움보다는 하루빨리 이 캐리어를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다.

pre-check-in을 마치고 애인이 전날 봐두었다는 카페에 도착해서 서로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그남은 너무 긴장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기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며. 나는 애인이 프라하에서 그런 걱정을 하고 있을 떄 러시아를 지나는 상공에서 피곤함을 겪어내야 했었다.

어쨌든 다시 마주한 얼굴은 반가웠고, 로맨틱한 감정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체크인 시각이 되어 호텔방에서 간단히 씻고 프라하 성이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다시 담배를 피웠다.

나와 애인은 헤비스모커라 우리 둘 사이에 담배나 술이 없는 때가 없었다.

최근 베네치아가 너무 더워서 매일같이 해변에 가서 수영을 하더니 까맣게 타서 돌어온 애인.

호텔 프론트 직원분이 애인의 국적을 브라질로 추정한 것도 스킨컬러에 의거한 킹리적 갓심이었다.

무작정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굴라쉬와 샐러드, 꼴레뇨를 주문했다.

꼴레뇨야 4년 전 처음 먹었을 때부터 별 특징 없는 고기쪼가리라는 점은 인지해왔지만, 딱히 이번 여행에서 미리 준비해둔 식당 리스트가 없다는 점과 동유럽은 처음 와보는 남자친구의 사정을 고려해 대충 여행자들에게 적합한 만만한 체코 전통 요리를 파는 음식점에 온 것이다.

매콤한 헝가리식 굴라쉬는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았고, 꼴레뇨 역시 잡내 없이 보드랍고 홀그레인 머스터드와 잘 어울렸다.

한국에서 먹으라하면 안 먹을 음식이지만 장시간의 비행 끝에 먹는 첫 식사라는 점과 애인과 공식적으로 함께하는 첫 점심식사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불만 없이 다정함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무엇보다 맥주가 참으로 좋았다. 체코는 와인도 출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맥주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애인에게 특별한 광경을 보여주고 싶어서 프라하성에 가자고 졸랐다.

흙탕물이 남자친구의 흰 스니커즈 코에 튀기고 내가 든 우선 꼭대기가 남친 정수리에 계속 부딪혀도 서로 좋다면서 부둥켜안고 걸어갔다. 하지만 그런 로맨스도 이 개같은 계단들을 오르는 순간 아작이 났다.

일하는 내내 서서 일하는 요리사인 애인은 사무직 개발자의 족창난 체력따윈 이해할 여력이 없어보였다.

힘들다 천천히 걸어라라는 명령에 묵묵히 내 보폭에 두 발을 맞췄지만, 이따금 보내오는 '너 체력 진짜 개노답이다'리는 눈빛에 알게모르게 부글부글 끓어올랐다고 한다.

4년 만에 다시 보는 프라하의 전경.

비가 와서 흐렸지만 이 흐린 하늘 밑에서 채도 빠진 프라하의 매력이 드러난다.

예의상 휙 둘러만 보고 내려와 예전에 갔었던 Beer Museum에서 에일과 흑맥주를 주문했다.

이 곳에서 우리는 프라하인들의 불친절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동양인 여자인 나에게만 그 지랄을 하는게 아니라 백남인 애인한테도 염병을 떠는 것을 보고 아 이새끼들은 관광객이 개호구로 보이는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프라하는 4년전에 비해 엄청나게 불친절해졌으며, 비싸졌고, 팁을 요구하는 도시로 변경되었다.

그래도 뭐 맥주가 맛있으니 또 오겠지. 비어뮤지움의 흑맥주는 종류별로 골라서 다 마셔봐야한다.

각자 석잔씩을 가볍게 마시고 까를교 근처의 식당에 밥을 먹으러 향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에서 바라보는 그 도시의 저녁.

돌을 쌓아만든 다리에 올라서면 붐비는 인파와 당혹스러움에 낭만따위 느껴지진 않지만, 난간으로 몸을 돌려 눈의 초점을 멀리 맞추어보면 느껴지는 기분이 달라진다. 정적이고 고요한 도시의 강변이었다. 귓가 너머에는 관광객들의 소란스러움이 멍멍하게 들려온다.

Retaurant Mlynec이라는 곳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남자친구는 공개된 주방의 청결함에 대해 첫번째 감탄을, 음식 맛에 대해 두번째 감탄을 표했다.

내가 주문한 오리다리 콩피 역시 아무 맛있었다. 양이 많아 다 먹지는 못했지만, 프라하에 가는 사람에게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레스토랑이었다. 직원들의 친절함과 영여실력은 굉장했고 실내 인테리어도 좋았으며 카를교 밑단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테라스석의 운치 역시 좋아보였다. 가격도 합리적인 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모닝 시가렛을 위해 테라스에 나오니 보이는 풍경.

크레인 뽑아서 강에 거꾸로 박아버리고 싶다....

이제 베네치아로 떠날 시간.

어제 갔던 카페에서 다시 커피와 크라상을 간단히 주문해서 먹었다.

프라하 거리가 예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섰는데 애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계속 내 캐리어를 끌고 가다가 내 사진에 그대로 박제 되었다. 프라하의 돌바닥은 귀엽고 멋지지만 캐리어를 돌돌돌 끌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다. 특히 비라도 오는 날에는 야마가 돌게 된다.

하벨공항 2터미널에 도착해서 또 다시 굴라쉬로 점심을 가볍게 먹었다.

그닥 배가 안 고파 주문한 굴라쉬인데 남자친구는 수프 한 접시를 더 주문해서 먹더라.

제2터미널은 유럽행 비행기들을 위한 터미널인데, 사람이 많이 없는데다가 출입국 심사도 없고 체크인은 모바일 보딩패스만 있으면 되니 모든 것이 빨리빨리 돌아간다. 유럽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기차나 자동차로도 다른 유럽국가 방문이 쉬운데다가 비행기를 타도 이렇게 모든 것이 간단하다니..

아무튼 여기서 코젤 맥주를 두 잔씩 마시고, 나른하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베네치아행 라이언에어를 탔다.

 

베네치아 이야기는 내일이나 내일 모레쯤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