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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일상

[고찰] 직장인 6년차와 그에 따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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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이라는 단어가 한창 유행할 시기가 있었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라고 한다.

내 일상은 소소하지도 않고, 확실하지도 않으며 행복과도 거리가 멀다.

거대하고 불확실한 불행이라고 정의했다.

누군가에겐 포르노로 비춰지거나 지나친 연민으로 판단된다한들 그저 삶이 그렇다. 슬프지 않다. 활자가 축축 처지는 것은 사회의 탓이다.


2014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지금까지 살아왔다.

먼저 나는 기업과 사회가 바라는 인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겸손은 염병 시벌

그냥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보니 버는 만큼, 아니 버는 것보다 적게 일하고 싶어하는, 칼퇴만을 기다리고 어떻게든 일을 쳐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경계선 인격장애라는 해일을 고스란히 맞고 서있는 서퍼라는 포지션은 덤이다.

열심히 산 결과가 위와 같음.


고등학교 때부터 여러 해커톤을 전전하며 상금도 받고, 다른 기획자와 개발자, 디자이너들과 어울리며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삶을 살았었다.

정치적 중립, 환경과 사회와 약자에 대한 관심을 통해 자아를 확립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으로 자라야하는 줄 알았다. 나는 존나 짱이니까!

수년이 흐르고...


1년차.

예쁨받는 활발한 '여'직원이 되고 싶었다.

성추행을 당했다. 괜찮다고했다. 웃으면서 그랬다.

2년차.

남직원들 사이에 못 끼니 소외된다.

담배를 펴야하나 고민했다. 

3년차.

화장을 하지 않으면 아파보인다고 일을 주지 않겠다는 소리를 들었다.

화장 하지 말고 말 걸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4년차.

어린 여자가 코딩에 대해 잘난척하면 개방구 취급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에 비닐봉다리 들고 다니고 싶어졌다.

5년차.

냉장고바지 입고 가죽잠바 입고 타투 존나 하고 출근했다.

꼴초됐다. 지들은 담배 오지게 피고 오면서 내가 자리 비우면 마실 나갔단 오해가 개족같아서 그냥 나도 피우기 시작했다. 일찍 죽을 것 같고 좋다. 혼자 옥상에서 이북 읽으면서 천천히 담배 빠니까 햇살도 따뜻했다.


그리고 6년차.

최근에 프로젝트를 하나 했다.

IT에 지식이 없는 구독자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낡디 낡은 초가집이 있는데 주춧돌을 좀 더 경량화 되고 새삥이고 라이트하고 트렌드에 맞는 돌으로 바꾼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다.

그 낡은 초가집은 새롭고 약한 주춧돌 위에서 어떻게 될까?

그런데 갑자기 웬 관리팀에서 줄줄이 나와서 초가집에 비가 샌다, 문지방이 뚫려서 안의 말 소리가 밖으로 유출된다, 등의 트집을 잡아서 뜯어고치라는 것이다.

그 때 나는 강둑이 터졌는데 혼자 눈물을 흘리면서 방수 스티커를 찍찍 떼어 붙이는 사람과도 같았다면 다들 이해 할까? 좋은 예산과 환경을 주고 집과 댐을 보수하라는 것이 아니고, 평소대로 밭도 메고 추수도 하면서 그런 일들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휴직을 권고 받았다.

이유는 내가 휴직이 합당해보일정도의 행동을 보였기에.

여기저기가 아파 당일 연차는 물론이고 지각도 한달간 자주 했다.

결국 두 달하고도 보름 정도의 병가를 냈고, 오늘 업무 인수인계도 마친 뒤 귀가했다.


지인에게 휴직이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를 비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속으로만 생각했던 말을 타자에게서 들으니 속이 후련한 느낌이었다.

그냥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이왕 불행한거, 행복에 마땅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말자.

썅년으로도 살아보자.


쉬는 동안은 오전 6시에 울리는 알람을 꺼둘 것이다.

우울하면 대낮에 옥상에 올라가 산을 구경하며 흡연을 할 것이다.

아픔이 그리우면 타투를 즉흥적으로 새기면 된다.

좋아하는 와인들의 원산지를 여행해보자.

대낮에 회사 근처에 있는 정신과에 들려 주치의에게 강짜도 소심히 놓을 것이다.

우린 비혼, 비연애, 비출산주의의 20대기에 충분히 나 하고 싶은대로 살아도 된다.

제발, 대충 살자. 제발,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