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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이태원] 환자복 입고 찾아간 단골 이탈리안 다이닝, 빌라드라비노(Villa De Lav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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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에 박힌 나사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 다음날 퇴원 의사를 밝혔으나 주치의의 완강한 거절에 상처를 입었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태원으로 와인 마시러 튐.
병원 탈주함

블로그에도 여러 차례 밝혔으나 서울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식당을 꼽으라면 바로 이 빌라드라비노라고 말할 수 있겠다.

좋아하던 남자 셰프님은 제주도로 내려가셨지만, 특유의 분위기와 요리 실력과 프렌들리하신 소믈리에 매니저님은 남아있기에, 환자복 입고 방문.

입원 중에 술 처마시러 갔다고 모라 하지 마요
제가 감당할 업보입니다.​

​미리 전화통화를 통해 7코스 메뉴로 주문했다.
가격은 9만원 상당.

처음 왔었을 때는 8코스에 7만원이었는데 그게 어언 4년 전ㅋㅋㅋ 그 때 같이 온 새끼는 이제 구남충이 되었고 아직도 내 인스타 염탐하고 쳐자빠져있다.

냄져들 머가리 상태 무엇

데려오는 사람마다 환장하는 이 작은 공간 속 이탈리아는 정말이지 잃고 싶지 않은 보물과도 같다.

즐비한 와인병들과 개나리색으로 페인트칠 당한 벽, 아름다운 테이블 디자인과 흥겨운 피아노 음악까지.​

미리 예약을 하면 원하는 스타일로 메뉴들을 준비해주시며, 못 먹는 식재료가 있으면 맞춰주신다. 나는 뭐 늘 치즈를 안 먹으니까 항상 치즈 없는 메뉴들로ㅋㅋ

서비스로 가끔 치지한 메뉴를 받긴 하지만, 기본은 늘 노 치즈다.

참고로 이 곳은 제철 식재료를 기반으로 이탈리안 다이닝을 선보이는 곳이니, 방문 전 그 취지를 다시 한 번 되새김질 하는 것도 분위기에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가져온 와인들은 미리 오픈을 부탁 드렸고,
손목을 보면 환자복 인증이 가능함.

가게 들어오는데 앞자리 남자 손님들이 수군수군 헉 저분 환자복 입고 오셨어(충격)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술과 밥을 먹겠다.​

스프리츠 한 잔을 미리 요청 드렸고 아페롤 대신 캄파리를 받았다. 생 오렌지를 착즙해넣은 스프리츠는 사랑입니다.

전형적 아페롤 스프리츠와는 달리 탄산수를 넣어 단맛은 거의 없고 진한 과일향과 살짝의 독함이 잔 속에 빙그르르 돌고 있다. 절름발이는 즐겁게 식전 대유잼을 즐겼습니다.​

일행들이 도착하자 코스가 시작되었다.
고성에서 피어나는 개체굴로써, 여러 다발로 열리는 여느 굴과 달리 각각의 개체로 열리는 굴이기에 개체굴로 불린다.

환상적인 접시와 기교 없이 최선의 석화 디자인을 보여주는 플레이팅에 우선 발바닥 박수를 쳐본다.

비네거를 올리지 않은 것은 굴의 오롯함을 느끼기 위한 셰프님의 올바른 선택이다.

나이프로 살덩이를 들어올려 한 입에 넣으면 비리지 않은 상쾌함이 입 안에 퍼지면서 고소한 살점이 두둑하게 씹힌다. 석화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나 이태리 다이닝을 즐길 때는 꺼리지 않는 것이 셰프들의 Oyster handling 솜씨를 믿기 때문.​

내가 준비한 와인 세 병 중 첫 번째 와인이 서브 되었다.

방돌 로제 특유의 라이트함과 크리스피한 산미가 두드러지는데, 남부 프랑스의 초여름 정원이 연상되는 듯하다. 잘 만들어진 로제 와인이라는건 명실상부하나 가져온 다른 와인들이 워낙 어메이징해서 다소 묻힘.

애초에 편하게 마실 스타일로 일부러 골라왔다.​

식전빵은 개체굴을 맛 본 뒤에 나왔다.
이런 부분 역시... 그저 기가 막힌 센스겠지.

소금을 뿌린 올리브 오일의 퀄리티는 말해 무엇.
부드러운 흰 빵과 쌉싸름한 풀 내음이 나는 오일은 참으로 조화롭고, 또 조화롭다.​

뒤를 이어 시칠리안 스타일의 비프 아란치니를.​

심도 있게 익힌 쌀과 다진 쇠고기가 한데 섞인 모습이 어째 익숙한데, 아마도 내가 만드는 유부초밥과 비슷한 비주얼이라 불쾌하지 않은 향수를 느꼈다. 지금은 주방에 발을 디딛지 않기 때문일까?

토마토 소스는 참으로 진지하다.
튀김은 양질이고 가벼우며, 적당한 산미의 토마토 양념을 익은 쌀 위에 한 가득 올려 먹으니 감칠맛이 돌았다.​

그 다음으로는 뉴질랜드의 내추럴 화이트 와인.
요즘은 신대륙에서도 내추럴 와인이 잘 나오는 편인데, 이 Non-Filtering 와인은 정말 내가 집에 쟁여놓고 마시는 와인으로 이 글을 읽는 모든 구독자들에게(아마도 와인을 사랑하는) 추천을 강력히 드리고 싶다.​

잔 위로 가득 피어나는 직관적인 망고 아이스크림 향에 취해 입 안에 머금어보면 그 달콤한 첫 인사와 달리 드라이한 맛 -향기가 아닌 맛이라는 단어에 유의 가 잘 느껴진다.

맛으로 먹는 와인이 이런 자연주의 와인이겠지.
일반적과 전형적이라는 단어에 권태를 느낄쯤 내 삶에 기적같이 찾아온 특별한 와인.​

더 허밋 램이 따라짐과 동시에 나온 참가자미 크림 리조또.

보리를 섞어 씹는 맛 좋게 볶고 익혀낸 곡물류와 헤비하지 않게 케이퍼와 통후추를 올려낸 크림의 만남 자체로도 이미 훌륭하지만, 제철인 가자미살을 섞었으니 그 식감과 풍부함은 오죽할까?​

리조또와 함께 빌라드라비노의 명물 알타리무 피클이 나왔다. 올 때마다 피클한 스타일이 변경 되는데 이 날이 그 중 제일 베스트 컨디션.

시큼함은 절제 되고 무 본연의 단맛을 미친듯이 이끌어낸 터프함은 혀 위에서 다소 고상하게 표현된다.​

본식을 맛 보기 전, 입 안을 환기시킬 용도로 준비된 오렌지 애플민트 셔벗 위에는 오렌지 껍질로 만든 크리스피한 튀일이 올려져있는데 이런 썅 존나 맛있다는 말로 대충 넘기겠다.

궁금하면 직접 가서 해달라고 하셈
너무 많이 가진 마세요
예전과 달리 장사가 잘 되어 좌석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단 말입니다​

내가 야심차게 준비한 마지막 와인은 바로 다미앙 카플라 2011인데... 사실 다미앙의 스승인 그라브너의 와인을 가져올까하다가 데려온 일행들에겐 다미앙도 충분히 하드코어할 것 같아서 우선 다미앙을 가져와봤다.

오렌지 와인의 끝판왕을 느끼고 싶다면 다미앙과 테누타 데토리, 그라브너를 순서대로 추천한다. 전부 수입사는 비노비노. 먹고 너무 충격 받지 마시고..​

다미앙 카플라는 마치 잘 만들어진 싱글몰트 위스키와도 같다. 그 동안 수백병 마신 와인들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맛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브리딩 최소 두 시간은 해야 그 맛들이 피어나며, 거친 바위 위에 흐르는 석청과 에이징 잘 된 위스키를 니트로 마실 때 느껴지는 단맛이 연상된다.

처음 다미앙과 그라브너를 마셨을 때 나의 반응 : 이게 와인이라고? 오 시벌 말도 안돼 세상에 어떻게 이런 와인이 아니 어떻게 이런 맛이 와인이라고 할렐루야​

채끝은 레어로 주문했다.
사실 스테이크의 경우 예전 셰프님 스타일이 (더티할 정도로 버터를 입혀낸) 훨씬 취향이긴한데, 지금은 팬프라잉에 훈연을 더해 나무향이 잘 입혀진 절제된 스타일이다.

비트를 올려 예쁘게 염색된 으깬 감자와 어린 아스파라거스, 베이비 토마토, 트러플 소금을 곁들였다.

쓰잘데기 없는 마블링 갖다버린 이 육향의 매력.
마블링 많은 소를 먹으면 나는 속이 울렁인다.​

다미앙을 마신 일행들의 반응 : 생각보다 괜찮다

가격은 안 말해줄라고 했는데 생색내려고 말해줬다. 10만원 초반 가격에 2011년 빈티지 구입 가능. 유통점은 강동구에 위치한 비노비노 소매점인데 이젠 토요일에 영업도 안 하고 평일엔 저녁 6시에 닫으며 배송 주문도 안 해줘서 와인 살라고 반차 쓰고 몇 번 방문했다.

비노비노에서 이촌에 와인바를 오픈했는데 그닥 안 땡겨서 방문은 한 적 없다. 비노비노쪽에선 내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름 건너건너 연이 좀 있더라.​

DOP등급의 햄 플레이트.
피스타치오가 박힌 햄의 경우 올 때마다 먹어서 감흥이 없다. 개인적으론 치악산 큰송이를 생으로 썰어 트러플 오일과 트러플 소금과 함께 먹던 시절이 더 그립다.

철이 아니기에 먹을 순 없었고..
참고로 곧 이탈리아에 갈 예정인데 아쉽게도 현지에서도 송로버섯철이 아니라 블랙 트러플은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그물버섯은 좀 구할 수 있을라나.​

단품으로 추가 주문한 굴 오일 파스타.
시금치로 보이는 제철 채소를 넣고 굴 내장과 강하게 볶아낸 마늘로 색을 진하게 입혔다.

그저 존___내 맛있는 파스타라고 수식하자.

마늘을 센 불에 탄내 없이 볶아낸 요리 실력에 요리 비전공자는 그저 탄성을 내지를 수 밖에 없고, 식감에 거슬릴까봐 볶아낸 마늘은 체에 걸러낸 세심함에 릐스펙트​

데일리급 화이트 한 병 추가 주문을 했는데 가비로 업그레이드해주셨다. 이 맛에 단골집 삼습니다.​

가벼운 맘으로 시켰으나 가비와인 치고 훨씬 진중한 면모를 보여줬던 와인. 3명이서 와인 네 병 정도는 처먹어야 여자답고 대장부다운 것임​

안주로 주문한 오징어찜.
총알오징어겠거니 했는데 찐이었다.​

오징어 순대처럼 이태리식 라따뚜이로 속을 채워 구워낸 요리인데 빌라드라비노의 실력은 바로 이 채소요리로 한 큐에 증명된다고 보장한다.

파프리카 청춘이다​

리몬첼로가 한국 수입이 중단되자 직접 담궈버린 클라스.
한 병을 그냥 주시면서 알아서 따라 드시라고
ㅠ^ㅠ​

기성 리몬첼로는 보드카나 물처럼 라이트한 목 넘김에 알콜향이 강하나 핸드메이드 리몬첼로는 벌꿀처럼 진하며 화끈한 향긋함, 강렬한 단 맛을 선사한다.​

비스킷 위에 거품친 생크림과 체리 퓨레, 생 딸기를 올려낸 디저트. 이탈리안 식사에서 디저트가 없으면 그것은 이탈리안이 아닙니다.

그만큼 훌륭하고 정제된 달콤함은 기본.​

이게 뭐게요​

제 전용 재떨이입니다.
마감 손님에다가 일시적 절름발이 + 흡연자로 인한 특별 서비스이기에... 평소에는 그냥 저도 밖에 나가서 핍니다ㅎㅎ​

티라미수로 마무리.
한남동 그 마리또 에 몰리에의 티라미수까진 아니더라도 빌라드라비노의 디저트는 믿고 먹어도 된다.

뭐 나는 마스카포네도 치즈라 안 먹어서 패스.
이건 일행들을 위해 주문.



이상 병상에서 쓰는 일기였습니다.
B형 간염 보균자로써 간암은 피하고 싶지만
이 기세를 보면 곧 걸릴 것 같읍니다.

다음에는 암 투병기로 찾아뵙겠습니다.

Best Regards,
From Ste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