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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서울대입구] 킷사서울 :: 도쿄가 되고 싶었던 샤로수길의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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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글에 재주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에 글도 쓰고 소설도 써보고 기사에 칼럼도 써보고 싶은데 끈기도 없고 표현력도 후지고 그러다보니 제일 만만한 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마저도 주저하게 된다.

회사에 복직을 했다.
복직 하자마자 일도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위가 족창이 났다. 겔포스도 먹다보니 맛있더라.

불면증은 여전하고, 어느 잠 못 이루었던 밤의 다음 날,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오후 반차를 쓰고 근처 모텔로 낮잠을 자러 향했다.

방배러다 보니 만만한 동네는 서울대입구다.

학창시절 기숙사에서 공부뺑이 치던 시절 스웨덴 세탁소와 이지형의 노래를 들으며 새벽과 자정에 서울대 앞 언덕을 넘어다니던 추억이 깃든 동네다.

몸에 기록된 그런 기억들이 날 이 곳으로 이끄는 것일까? 는 무슨 그냥 가까운 곳에서 술 먹고 싶어서 자주 가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낮잠을 때리기 전 최근에 새로 생겼다는 일본식 양식집인 킷사서울에 방문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서울대입구에 일식집 정말 오지게 많다.

한그릇으로 일뽕을 거하게 전파하려는 수작질이 난무하는 곳, 권리금은 주제 넘게 치솟는 곳, 샤로수길.​

꽤나 포멀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 층고 높은 인테리어와 금속 식기구, 직원의 멜빵감성. 인스타에서 본 어떤 후기에 따르면 경성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동의 하지 않는다.

일식집에서 경성 인테리어를 하는 것은 매국노가 아닌가. 기껏 시간 내서 찾아간 밥집이 매국노라면 심경이 괴로울테니 그냥 도쿄 느낌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도쿄에 가면 이렇게 월넛, 체리가 섞인 우드에 흰색 식탁보를 가진 카페 겸 밥집이 널려있다.​

요즘 서울 돌아가는 유행에 뒤지지 않게 가츠산도와 타마고산도도 구비를 해놓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돈까스빵이든 계란빵이든 먹어볼만큼 먹어봤으니, 멘치까스와 오므라이스를 주문했다. 위가 너무 아팠지만 이왕 찾아온거 두가지를 먹어보고 배부르면 쿨하게 남기려는 수작이었다.

메뉴판 하단에는 크림소다류도 있었는데, 실제 일본에서 먹을 수 있는 싸구려틱한 시럽맛을 완벽히 고증해놓은 것이라면 굳이 사먹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그냥 병맥주나 한 병을 주문했다.​

식전에 주는 단호박 수프는 괜찮았다. 잘 익은 단호박 본연의 단맛에 과하지 않은 크림이 들어가 느끼함과 달콤함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금속 스푼으로 떠먹다보니 혀 끝부분에 맴도는 짜릿한 철분의 감촉이 지나치게 날카로웠다.​

요즘 하는 북유럽 자동차 조립게임에는 샤워하면서 맥주도 마시고 담배도 필 수 있는 기능이 구현되어있다. 위가 다 헐어 와인 한 병도 다 못 먹는 와중에 본능적으로 시킨 왜구 맥주는 참 시원하고 맛있고 또 고통스러웠다.

직장인 3대 영양소 니코틴 알콜 카페인 못 잃어​

오므라이스와 멘치카츠 항공샷.
인스타 감성이지만 인스타에 올리진 않았다.​

고구마 모양으로 예쁘게 빚어놓은 멘치카츠. 달걀 후라이와 튀기고 구워놓은 야채가 가니쉬로 함께 한다.​

치즈포비아에게 너무 괴로웠던 이 치즈밥.
직원이 식탁에 내려놓는 순간 풍겨오는 강렬한 노란치즈 냄새에 야마가 돌았으나 블로그에 소개는 해야할 것 같아서 참고 찍어왔다.

유치원 시절에 나는 냉장고 야채칸에 담겨있던 햄이 너무 먹고 싶었지만 나의 모부는 언제나 그 옆의 앙팡 치즈를 한 장씩 꺼내주곤 했다. 그 때부터 치즈가 역겨웠다.​

온도 높은 기름에 진득히 튀겨진 얇은 연근과 파파이스에서 팔던 옥수수구이와 비슷한 품종의 옥수수 조각.

튀긴 야채를 마다하는 바보는 아니다.​

멘치카츠를 갈라보았다.

육즙이 뭉근하게 퍼지면서 미디움 웰던 템포로 익혀진 고기다짐이 드러났다. 튀김옷은 적당했고, 곁들여진 데미그라스 소스는 튀지 않아 다행이었으며 뻑뻑한 쇠고기와 부드러운 쇠고기 부위와 살짝의 연골이 잘 다져져 있어서 식감 또한 괜찮았다.

오므라이스를 먹고 싶어서 방문했는데 기대는 조또 안 했던 고기튀김이 입맛에 맞아서 아주 약간 놀랐다.​

다음으로는 옴으라이스...
탄포포 스타일로 예쁘게 반달 모양으로 조리된 반숙 계란덩어리가 밥 위에 올려져서 나오는데 직원이 쓱 갈라준다. 갈라주기 전 모습도 찍고 싶었는데 귀찮아서 그냥 바로 갈라달라고 요청했다.

약간의 케첩을 넣고 볶아진 밥 사이에는 팬에 살짝 눌어붙은 적이 있던 옥수수 낱알과 부채살 부위로 추정되는 쇠고기 조각, 야채가 들어있었다.

맛은 놀라울만큼 평범했다. 너무 부드러워 씹는게 어색한 고기 부위보다는 다진 고기를 사용하여 식감을 살리는 편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런 오므라이스는 늘 마음을 배신한다.

촉촉한 달걀과 볶은 탄수화물, 달큼시큼짭조름한 소스의 감칠맛까지 분명 맛이 있어야할텐데, 일본 본토에서 먹는 그것이나 킷사서울의 그것이나 참으로 무감흥하구나.

오히려 초등학생 때 먹은 식어빠진 오므라이스가 그립다. 오후 세시경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식탁 위에 엄마가 차려놓은 오므라이스와 교회 갔다 오겠다는 메모가 있을 때가 많았다.

이미 차가워진 바싹 지진 계란지단, 그 밑에 깔린 대충 볶은 밥 -대충 자른 양파는 필수- 하트를 그리려다가 양조절이 안되어 듬성듬성 끊겨있는 케첩 그림까지.

우리의 추억은 왜 뇌가 아니라 미각과 후각에 갖힌걸까.
휴먼이란 참 감성적인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