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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청담] 서울 미식 찾기 6년차에 드디어 발견한 소중한 식당, 익스퀴진 (Excuis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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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파인다이닝의 '맛'을 정의하기란 여러모로 까다로운 요소가 많은 법이다. 단순히 들어가보자면 식재료들의 신선도와 맛의 조화, 셰프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며 서빙 애티튜드와 식기류, 와인 선정과 식사의 흐름까지 따지고 볼 것이 많다.

그에 따라 최상의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사람들은 돈을 꼬라박는 것이고, 특별한 날의 데이트 같이 단편적 요소가 아니더라도 미식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나 말고도 많다. 이러한 집단적인 갈구의 끝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어느정도 내줄 수 있는 식당을 찾았다.

청담동 익스퀴진은 한식을 주제로한 컨템포러리 식당인데, 미슐랭 원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다. 미슐랭 스타의 경우 내가 그리 중요하기 여기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간단하게 소개용으로 언급만 하고 더 이상 글의 주제로는 다루지 않겠다.

​평일 점심에 홀로 방문했더니 유리통창문 앞에 자리한 단체용 테이블에 자리를 내주었다. 따뜻한 월넛색의 거대한 테이블에 나를 위한 간단한 자리가 마련되어있었다.

​채광을 등지고 앉아 사진의 퀄리티는 좋지 않다.

위치를 바꿀까 생각했으나 귀찮아서 그냥 앉아있었다.

​5.5만원으로 구성된 하나의 런치코스가 있다.

불친절한 메뉴 소개 때문에 요리가 준비될 때마다 서버가 간결하게 요리를 설명해줘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근처에 호텔을 잡아놨던 중이라 부담없이(?) 혼자지만 와인 한 병을 주문.

프리울리 지역의 예르만이라는 생산자를 좋아하는 관계로.. 산뜻하게 피노그리지오 한 병을 주문했다. 가격은 9만원 정도로 기억한다.

와인리스트가 방대해서 마음에 든다.

수많은 목록 중 하나를 집어 주문해도 재고가 없다거나 해당 빈티지가 없다거나하는 최악의 실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와인 재고조차 관리하지 못할거면 와인 리스트를 없애는게 낫다. 진짜 개짜증... 특히 와인 목록도 얼마 없는 식당에서 자주 발생하는게 아이러니.

​직원들의 매너는 수준급이다.

와인 라벨 확인 후 온도 체크, 와인 상태 체크, 오케이 떨어지고.

물과 와인은 수시로 잔의 상태를 확인하여 하여 따라주며, 식사 중간중간 컨디션을 체크하는 실력을 가지셨다. 셰프인지 서버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로페셔널한 부분에 점수를 잘 주고 싶었다.

​예르만이 생산하는 엔트리급 와인인만큼 복잡한 맛의 와인은 아닌.

화이트와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과 등의 즙 많은 과실향이 중간급의 묵직함 속에 대충 녹아들어가있다. 이런저런 생각하며 시음할 와인은 절대 아니며, 익스퀴진의 코스 흐름이 레드보다는 화이트에 어울리는 관계로 주문한 와인이다.

​전복김치와 잣우유가 Snack의 첫 번째를 담당했다.

전복살을 물김치처럼 시큼하게 발효하였고, 잣 우유는 -굉장히 적나라한 표현임을 미리 밝힌다- 튀김옷을 액체로 마시는 듯한 맛을 낸다. 잣의 향기보다는 튀김옷의 느낌이 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불만 아니고 칭찬임을.

어린 고수 쪼가리는 전반적인 음식 조화 안에서 킥을 담당한다.

​두 번째 스낵으로는 Crispy처리한 봄동과 들기름 파우더, 요거트 소스.

개인적으로 요거트의 단 향이 살짝 거슬려서 그닥이었다.

들기름향과 바삭한 봄동 내음의 조화는 나쁘지 않았다.

​세 번째 스낵으로는 광어 튀김과 파프리카로 만든 케첩이 준비되었다.

오징어먹물로 튀겨낸 광어를 따뜻한 돌멩이 위에 올림으로써 시각적으로 예술을 구현한다.

​예쁜 색깔의 파프리카 청춘.. 아니 파프리카 케첩..

​흠 잡을 부분 없이 튀김옷을 입혀낸 광어살의 은은한 산미와 케첩의 하이한 산미는 마치 연보라와 진보라의 조합과도 같다. 다른 색의 조합으로 미술을 처리한 것이 아니라 톤의 차이로만 배합을 완성한 미술품과도 같다는 의미다.

​스낵 다음으로는 대저토마토가 준비되었다.

그리고 버터밀크 아이올리와 제주산 딱새우.

우선 짭짜름하고 단단한 대저토마토 자체가 하나의 근사한 메인 소스가 되어준다. 씹을수록 고소하게 느껴지는 불의 향을 입은 딱새우의 손질도 훌륭하다.

한 마디로 계속계속 먹고 싶은 맛이라고 하고 싶다.

잘 만든 한 점의 스시와도 같은 조화로운 우주의 맛.

​시금치를 주제로 한 다음 메뉴는 바로 섬초다.

푸릇하고 싱그러운 이파리와 검은 접시가 보기에 장관이다.

​섬초 밑에는 흑보리밥과 구운 가리비, xo소스, 땅콩 퓌레가 깔려있다.

땅콩 퓌레로 인해 크리미한 리조또 같은 보리알의 알알한 존재감이 상당히 돋보이는 구성이다.

섬초의 향은 강하지 않으나 XO소스의 터치가 섬세하며 조화롭다.

살짝 들어간 감귤 슬라이스의 경우 맛을 한 번에 판단하기 어려워 따로 빼놓았는데, 셰프님이신지 아무튼 담당 직원분이 오셔서 메뉴의 하자를 물어봤고, 그냥 입맛에 안 맞아서요..라는 성의 없는 대답으로 퉁쳤다.

개인적으로 나는 소심한 사람이라 식사 중에 맛의 컨디션을 묻는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방긋 웃으면서 맛있습니다.^^.하고 넘겨버리지만, 아무래도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한 아싸라서..

​메인으로는 3주간 드라이에이징한 오리가슴살.

겉껍질을 바삭하게 익히면서 단맛으로 악센트를 준 점은 좋았지만 고기 자체에 소금간이 약했다..

​고기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토종 곡물 그래놀라와 달콤한 당근 퓌레가 그나마 간을 맞춰주는데, 직접 부어주시는 '진하게 만든 소스' (셰프피셜)이 진하지 않다는 점이 안타깝네.

엔다이브도... 소금 좀 쳐주시지..

귀찮아서 소금은 따로 요청하지 않았다.

조금 더 풀어말하자면, 나는 파인다이닝에서는 셰프가 주는대로 받아먹는다.

셰프의 음식 해석이 이해가 안 가면 그냥 안 받아들인다. 타인의 감정이자 생각이다. 오롯이 마음에 들리라 기대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것이 없다. 그저 객관적으로 그 가치에 대해 조금 생각이나 해보는 거지, 마치 마음에 들지 않으나 마음에 드는 시를 읽을 때처럼.

​디저트로 준비된 감귤 소르베와 천혜향 타르트, 캐러멜 소스와 싱그러운 소렐 이파리.

​구구절절 설명 않겠다.

원래 식사 후에 리틀앤머치에 들리려 했으나 이 디저트 먹고 리틀앤머치가 필요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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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는 손으로 직접 담궈 진하게 우려낸 우엉차

그리고 오미자초콜릿떡과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 갓 구워낸 크림슈.

배가 생각보다 많이 불러 맛있게 먹지는 못했다.

배가 부른데 어떻게 맛있게 먹어요?

그런 경험은 방콕의 팁싸마이에서만 겪어봤다.


식사를 하는 2시간이 마치 30분처럼 흘러갔다는 것이면 재미 있는 식사자리였다는 것이겠지. 홀로 방문해서 핸드폰이나 쳐봤음에도 불구하고. 

조만간 디너에 방문해서 좀 더 자세한 셰프의 한식에 대한 견해를 음식으로써 판단해보고 싶다.

서울에 레스토랑 참 많지만, 안면도 없는 셰프에 첫 방문에 마음을 끄는 곳은 아주아주, 아주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