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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대학로] 한신포차, 추억은 맛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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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블로그에 한신포차를 올린 것을 보고 일부는 '이 분 이런 데도 후기 쓰시네;;'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의외로 맛있게 먹은 닭발이라 이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서 짧게 글을 쓴다.

한신포차는 스무살 시절에 몇 번 가보고 그 뒤로 발길을 끊은 곳인데, 불친절한 알바생들과 비좁고 불편한 의자들, 의미 없이 섞어 놓은 술과 맛 없는 과일소주 등의 키워드들로 인해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돈 없는 대학생들이 시끄럽게 어우러져 닭발을 끊임없이 씹어뱉어내고 통닭 살을 바르는 곳이 바로 한신포차다. 그리고 그런 곳이 또 대학로고.

닭발이 땡겼는데 닭발 먹는 집이 증발해버려서 한신포차로 약속을 잡았다. 사실은 밥에 대한 기대를 하고 만난 약속이 아니라, 한신포차든 어디든 닭발만 적당히 먹으면 되겠다 싶은 마음으로 대학로점 방문.

​여름날 벌건 대낮 같은 오후 6시에 입장하니 신분증 검사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다. 

소음이 덜할 것 같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닭발을 주문하니 콩나물국을 이내 내어왔다. 한신짬 좀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콩나물은 추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미리 만들어놔서 식어버린 닭발 한소쿠리를 냄비에 담아 퉁명스럽게 버너 위에 올려준다. 한신포차 닭발을 무려 만칠천원 주고 먹다니 시간이 빠름을 느껴본다. (그래봤자 저 아직 어려요;;)

야채는 별로 없고 오로지 닭발과 점성 있는 국물만이 존재하는.

국물에 살짝 불어 ​부들부들한 닭발살을 이빨로 찢듯이 발라내고 약간씩 씹히는 닭뼈와 우물거리니 양념의 밸런스가 참 좋게 느껴졌다. 그리 맵지도 않고, 약간의 후추향이 감도는 진하디 진한 빨간 양념은 달듯 달지 않듯 그 적당한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닭발엔 주먹밥이 빠질 수 없다. 잘게도 잘 다져놓은 단무지와 약간의 쪽파, 김가루가 수북히 쌓여있고 그 사이에 마요네즈가 한 웅큼 들어가있다. 

마요네즈를 싫어하는 친구 김가놈이 마요네즈를 걷어내려는 만행을 시도했으나 이내 제지.

​굳이 뭉쳐주겠다고 열심히 밥을 굴리는 시간이 나에게는 마음에 익었다. 눈에 익었던 것은 빠글빠글 끓던 닭발과 내 자신의 거지같음이었지, 정작 마음에 다가온 것은 하잘것 없는 밥뭉치였다.

단무지를 잘게 다지니 거슬리게 씹힐 일도 없이 본연의 역할, 즉 단맛과 새콤함을 내는 역할에 굉장히 충실했다. 마요네즈가 밥알을 감싸주고 그 위로 깊게 끓고 있던 국물 몇 수저 올려서 매콤하게 먹으니 단-맵-짠-신의 조화로움이 마치 사계절과도 같았다.

​어느 정도 닭발을 먹었으면 콩나물국을 왕창 부어준다.

돈이 없어 용량을 늘리려는 것도 아니고, 콩나물국물이 없으면 매워서 못 먹는 것도 아니고 큰 의미는 없는 행위지만 한신포차를 찾는 사람들은 꼭 어떠한 종교 의식과도 같이 이 프로세스를 거치곤 한다.

​차갑게 식은 콩나물 국물이 닭발 위로 부어지자 닭발에 은은한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불을 올리고, 금세 뜨거워진 리뉴얼 닭발을 앞접시에 하나씩 덜어 놓고 그 전에 담아 놓은 주먹밥을 먼저 먹은 뒤에 다시 닭발을 뜯는다. 

그리고 담배 쿨타임이 돌아온다.

​계란찜이 만원인데 만원다운 양이다.

이건 하나 팁인데... 계란찜을 크게 몇 수저 떠서 앞접시에 덜은 뒤, 닭발 국물을 왕창 넣고 으깨면서 비빈 뒤에 한술 크게 뜨면 보들보들하면서도 양념 빡세고 뜨끈한게 아주 맛있다. 실제로 그렇게 배를 불렸다 이날. 너무 맛있어서!

불친절한 알바생에게 볶음밥을 부탁하면 주방에서 볶은 밥이 아닌 '비빈 밥'을 만들어 남비 위에 올려준다. 그러면 우리는 새 숟가락을 하나 청해 우리끼리 신나게 볶아댄다.

다진 김치와 김가루, 닭발국물이 밥 위에 쏟아졌는데 맛이 없으면 국가적 배신이다. 축축한 밥이 입 안에 들어오는 과정이 사랑스럽다. 그걸 음미하는 내 자신도, 쏘맥을 잘 말고 있는 옆 친구도, 우리의 불행함과 불편한 의자도 한신포차의 가스 버너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뭉뚱그려지는 것이다.

조만간 다시 한신포차를 방문하고 싶다. 점바점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파트타이머를 고용하는 업장이니) 아마 대학로점을 다시 방문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