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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연희동] 기대 이상의 진실된 이탈리안 요리를 선물해준 작은 가게, 에노테카 오토(Enoteca O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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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블로그를 꽤 열심히 하다보니 일주일만 잠수타도 한달은 자리를 비운 것 같다. 글 쓰고 업로드하는거 좋아하는 본투비업로더인데 뭔가 작정하고 하려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프로그래밍 좋아하지만 생업으로 삼으니 좃같은 것처럼....★

이제 연초라고 하기도 뭣한 1월 말이지만, 연말연시 신년을 맞아 다녀온 장소가 있다.

연희동에 작은 와인 선술집(에노테카)가 있는데 ​8점짜리(오토) 음식을 팔고 싶다는 마인드가 재밌어보여서 음식 맛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고 방문했다. 사실 10점이 아니라 8점짜리 음식을 내세운다는 의미는 그만큼 편하게 와서 편하게, 하지만 맛있게 먹고 가라는 뜻 아닐까?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하신 직원이 있고, 주방에 꽁꽁 숨어계셨던 셰프가 그 곳에 있었다.

​비좁은 2인용 테이블.. 최근 이렇게 좁은 곳에서 식사를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저는 1인1메뉴를 무시하고 1인2메뉴는 시키는 사람이라 넓은 공간이 필요합니다만..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조명은 취조실처럼 우리 머리 위에 달려있어서 그림자가 잘 생긴다. 사진찍기엔 별루인 자리를 얻어걸렸다.

​이 곳을 고른 이유는 메뉴를 보니 아 여긴 진짜 요리하는 집이다라는 삘이 왔다. 미식 인생 살다보면 어느순간 이럴 때가 오는데 그건 바로 메뉴판의 음식 리스트만 봐도 내공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거다. 우선 이것저것 다 파는 곳은 1순위로 피한다. 파스타의 종류가 전문적이지 않고 크림/토마토/오일 베이스에 재료만 바꾸는 곳도 피한다.

또 주로 이렇게 종이로 출력한 메뉴를 좋아한다. 그 뜻은 셰프가 요리 연구를 계속함으로써 메뉴가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지. 종이 메뉴는 그만큼 변경하기가 쉬우니까. 

일단 Antipasti 로는 속을 채운 그린 올리브 튀김을 한 접시 주문했다.

​파스타 메뉴로는 나는 제노바식 어란 파스타를 주문했고 남자친구는 라자냐를 주문하려고 했지만 라자냐가 다 떨어졌다고 해서 라구로 변경했다. 이건 내 미식 인생에 꽤나 큰 영향을 끼친 이벤트였다. 라자냐가 없어 시킨 남자친구의 라구가 말이지..

에노테카라는 장르에 걸맞게 나름 와인리스트도 갖추고 있다. 와인 전문점보다는 다이닝에 치중한 장소지만 그래도 이 정도 마진으로 와인을 판다면 굳이 콜키지 안하고 사먹어도 무리 없을 듯. 마트 가격에 2만원정도 더 붙인 것 같다.

라이언이 가져온 신대륙 레드와인 1병은 콜키지를 부탁드리고(잔당 콜키지 5천원) 업장 와인에서는 빌라 클라라 까바 브룻을 주문했다.​

​요즘들어 식전빵을 바라보는 기준이 까다로워졌다. 

첫째, 부드러운 흰빵일 것.

둘째, 품질 좋은 올리브유에 발사믹은 살짝만 곁들일 것.

에노테카 오토의 식전빵은 합격이었다. 포도밭, 올리브밭 내음이 올라오는 싱그러운 올리브오일.

​개샹무난한 까바

Villa Clara Brut NV

데일리 와인이라 뭐 깔 곳이 없다. 데일리 스파클링의 경우 맹물급 아닌 이상 닥치고 먹어도 된다는게 내 의견이다.

​2014년에 만나서 크리스마스를 3번 같이 보내고 4년째 해를 맞는 우리에게 건배요

산미와 기포가 꽤 거칠거칠한 빌라클라라 브뤼

​기다리고 기다리던 올리브 튀김이 나왔다.

좋은 올리브 없어서 못 먹는데.. 그런 올리브에 씨를 빼고 속을 채워 튀겼다니 안 먹으면 셀프 바보될 것 같아서 꼭 시키자고 다짐했던 요리다.

양은 얼마 없지만 기계로 씨를 빼고 또 속까지 채워야하는 손이 많이 가는 요리니 얕볼 순 없다. 슬쩍 뿌려진 파르메산 치즈.

​그린 올리브의 아삭함, 쿰쿰함, 짭짤함, 피클향..

리치한 속살 속에 느껴지는 고소한 다짐육과 야채. 빵가루 제대로 입혀 바삭한 튀김옷과 잘 어울렸다. 입맛을 돋구는 용도는 모르겠고 가벼운 술안주정도로 어울리는 요리다. 조금만 더 절인 올리브의 소금기를 뺐더라면 먹기 편했겠지만 튀김옷이나 고기소에 간은 안된 느낌이니 나름대로 밸런스는 맞았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집에서 만들어보고 싶은데 난 안될거야 아마.. 

​​캘리포니아의 까베르네쇼비뇽.. 아발론.와인.

심드렁~한 상무난와인인데 선 예쁜 남자처럼 쪼이는 맛이 상당해서 식사에 함께하기엔 적합한 와인이다. 라벨에 하트가 붙어있어서 발렌타인데이에도인기가 좋대나 뭐라나.. 내 생각에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면 이런걸로 퉁칠 생각하지 말고 비싸고 좋은 와인을 갖다 바치라고.

이 날 컨디션이 그닥 좋지는 않아 둘이 와인 2병은 힘들었다. 평소라면 다 마시고도 부족했을텐데...

좁은 테이블에 와인잔 4개에 와인 2병은 힘든 것이야. 심지어 아이스 버켓도 없었다. 미지근한 까바는 팍씨..

​짙은 오크향이 매력적이었던. 오크숙성을 12개월 이상은 한 것 같다.

술 마시면서 오크통 얘기를 꺼내니 라이언이 와인 얘기 좀 더 해보라고.. 근데 밑천 떨어져서 뭐 더 할 말은 없었다.

​라구 파파델레(20,000원)

메뉴상에는 파파델레라고 나와있지만 굵기를 보니 딸리아뗄레와 파파델레의 중간 같다.

우린 쉐어를 좋아하지 않는 커플이니까 서로의 파스타를 맛만 보기로해서 내가 얘꺼 라구를 맛 좀 봤는데 어머.. 이게 뭐죠. 

그동안 라구, 즉 볼로냐의 미트소스는 그저그런 싸구려 토마토소스라고만 생각을 해와서 전문 업장에서 시도를 해본적조차 없었다. 그런 편견이 산산조각난 이유가 바로 이 라구 파스타. 촉촉하면서도 부드럽게 익은 면발이 짙은 풍미의.. 진한 고기와 토마토가 어우러져 고기도 아니고 토마토도 아닌 새롭고도 고급스러운 풍미를 머금고 있었는데 아, 라구가 이런거구나. 이게 라구구나... 딱 느낌이 왔다.

먹을 당시에는 살짝만 충격 받았는데 지나고보니 자꾸 떠오르는 맛이다. 결국 나는 현재(2017년 1월 24일) 서울의 라구파스타를 투어 중에 있다. 6-7개 업장의 라구를 먹어보고 비교를 해볼 예정이다.

​치즈를 더 올려달라고 라이언이 요청을 하니 친히 주방에서 치즈를 가지고 나오셔서 바로 갈아주셨다.

치즈냄새 극혐 쉬발.. 앞에서 강제로 극혐식재료 냄새 맡는 내 심정..

​결국 얘는 이정도까지 치즈를 추가해서 먹었다.

이때 진짜 짜증나서 구박을 존나 했다. 이 얘기를 들은 친구가 나보고 먹으란 것도 아닌데 냄새 정도는 참을 수있지 않냐고 하길래 그럼 너는 누가 네가 극혐하는 오이를 밥 위에 한가득 얹어서 오이 냄새가 풀풀 나는데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겠냐고 되물어보니 바로 수긍하더라 ㅋㅋㅋㅋ 암튼 나랑 먹을 때 과도한 치즈는 안돼. 네버.

​재노바식 어란 파스타(21,000원)

먹물로 반죽한 넙적한 파스타를 오일과 토마토, 바질로 요리해서 어란을 곁들여 먹는 요리.

어란 같이 귀한 식재료는 파스타로 만들어 먹어야 제맛.. 구정 선물로 어디 좋은 어란이나 선물 받았으면 좋겠다. 한우보다 비싸쟈나ㅠㅠ

​토마토 육수와 오일이 어우러진 국물에 쫄깃한 생면 파스타 특유의 느낌은 담백함 그 자체였다.

살짝 간이 싱겁나? 싶었는데 입 안에서 사르르 녹으면서 짭짤하고 강렬한 어란이 간을 다 잡아주었다. 아.. 그 짜릿한 바다의 맛. 생선이 품은 바다의 향을 최고조로 압축한게 바로 어란이다. 구수하고 정겨운 면발 위로 살짝 살짝 튀어오르는 어란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근데 또 간다면 라구 파스타 시킬듯. 나는 전반적으로 간간한게 좋으니까.

​와인이 남아 요리를 더 주문하고 싶었는데 직원분이 오셔서 오늘 chef가 너무 exhausted해서 주방을 닫았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춥다.. 추워...

아직 9시였는데요ㅠㅠ 요리가 다 정겹고 진솔한 맛이라 꼭 한 접시는 더 먹어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그래도 아이스크림은 준비되어 있다고 하셔서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주문했는데 아주 부드러운 느낌의 무거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었다.

와인에 먹기엔 그닥이지만.. 우린 배가 안 찼을 뿐이고. 아직 먹을 수 있는게 업장에 남아있다면 뭔들


에노테카 오토는 아쉬운 장소다.

음식 맛이 아쉽다기보단 내가 아직 이 장소의 진가를 엿보기엔 너무 소량의 요리만 먹었던 것 같다. 두번, 세번은 더 가서 다양한 요리를 주문해보고싶은데 언제가 될지....  조만간 가서 내 인생의 라구 시초가 되었던 그 파스타와 다른 요리를 하나 더 먹어보고 와야겠다.

그리고  취향이 좀 탈 것 같은 레스토랑인게, 나는 사실 강렬한 맛보단 그 레스토랑이 자신의 공간을 어떻게 다루고 요리를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 에노테카를 좋아할 수 있었다.

다만 흔하게 먹을 수 있는 대학가 비스트로 st의 파스타맛의 pool에서 크게 벗어나고 싶지 않다면 비추.

정말 이탈리아 시골 한 구석의 작은 가게 같은 곳이라 다소 낯선 맛의 음식을 맛 볼 수도 있다. 그에 대한 판단은 알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