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연휴를 하루 앞두고 나는 오늘도 피곤하다.
사용하는 닉네임은 Boring Stella가 맞지만 어느순간 보니 피곤한 스텔라가..
여자는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남자는 재기GO
이촌동 스시상가는 누누히 말하지만 유명하다.
꽤 연식이 있는 만큼 인지도가 높고, 단골들이 많고, 불친절함에 이를 갈며 돌아서는 손님들이 많다. 내가 아는 이촌동 스시야 3곳의 이미지는 이러했다. 기꾸는 가장 뿌리가 있지만 친절함이 없다싶이한 곳이며, 우메는 맛이 좀 떨어져서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곳, 긴스시는 기꾸보다 덜 알려져있지만 친절도에 있어서 잡음이 없고 맛이 좋아 내가 좋아하는..
그런 긴스시에 요즘 불친절함에 대한 불평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한 번 찾아가보았습니다.
토요일 늦은 오후에 4명이서 얘약 방문했는데 꽤나 인기가 많아졌는지 식사하는 도중 만석인 현장을 볼 수가 있었다.
여느 때처럼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하기 좋은 곡"들이 반복되어 흘러나온다. 아주 작은 공간 사이사이에 걸려있는 옷걸이가 기억에 남는다. 겨울에 한파를 헤치고 찾아온 손님들의 두툼한 옷들이 식사하는 주인 등 뒤로 걸려있는 풍경을 보면 왠지 참 스시야답다라고 느껴진다.
간장종지와 말챠가 세팅이 되고..
혼자서도 와보고 여럿이도 와봤는데 내가 느낀 점은 셰프님은 손님과의 대화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 앞에서 열심히 헛소리하며 재밌게 떠들면 가끔 웃으시는데 그 자그마한 실소가 오마카세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혼자 가면 입을 닫는 편이다. 밥 먹는데 귀찮앙...
챔기름 듬뿍 올려진 진한 전복죽으로 역에서 걸어오는 동안 차갑게 식은 위를 덥혔다.
새큼한 드레싱으로 덮인 샐러드에서는 야들야들한 양배추 잎사귀 부분만 건져먹었다.
야채 스틱과 쌈장도 볼 수가 있는데
정말 소주 없이 이런 것을 먹고 싶지 않다.
긴스시에 올 때마다 목을 쭉 빼고 이 것이 언제쯤 나오나 기다리게 되는데..
아귀간과 광어 지느러미, 소라를 산미 강한 초간장과 날치알, 적양파, 무순 사이에 놓아 먹는 전채(前菜)요리.
아귀간만 있다면 푸아그라의 존재는 지워도 될 것이다.
입자 고운, 밀도감 넘치는 이 고기덩어리를 살짝 떼어 먹어보면 고소한 풍미와 더불어 맛있음이 뻑뻑해진다. 입에 가득 차오른다. 아구는 담백한 생선인데.. 그 놈 간 하나는 잘 뒀어
오늘의 흰살생선으로는 광어지느러미가 나왔는데 기가 막힌 기름진 맛이다.
오독하게 이빨이 박히면서 이내 쫄깃하게 씹히는 살점에서 배어나오는 리치한 맛..
새콤한 초간장과 날치알, 양파가 주는 미식적인 즐거움 역시 빼먹을 수 없다.
오늘따라 장국이 평소보다 담백하다. 실파가 춤을 춘다. 국 속에서...
저번에 셰프님과 장국 재료 맞추기 놀음을 잠깐 했었지.
원래 사시미는 건너 뛰었었나?
아무튼 첫번째 스시는 광어.
부드럽고 진하고 광어가 이런 맛이었나 싶었다. 저렴하고 일반적인 스시가게에선 거들떠도 안 보던 초밥인데 긴스시에만 오면 "아주 맛있는 스시"가 되는 이유가 바로 긴스시의 장점일 것이다. 흰살생선을 아끼는 마음이 그대로 맛의 급으로 표현된다고 해야하나.
도미 역시 광어 다음 주자로 손색이 없는 맛이었다.
도미가 만들어주는 단 맛.. 또 느끼고 싶다.
그리고는 마쓰가와 도미 (껍닥도미)
간장을 듬뿍 네타에 발라서 살짝 말아 한 입에 넣으면 된다.
쫀득하고 달콤하고 껍질이 씹히는 식감이 좋은 껍닥 도미~
주도로.
주도로라는게 믿기지가 않는 섬세한 기름짐이 느껴졌다. 샤리가 단단하면서 두툼하여 더욱 크게 작용하는 이 뱃살의 기름진 맛에서 언제쯤 헤어나올 수 있을까? 주기적으로 도로를 안 먹으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광어 한 번 더. 옳다구나 했다. 아마 우리가 광어 맛있다고 한 것을 들으셨나.
이번에는 와사비가 좀 더 강하게 들어왔다.
즈께 아까미는 그렇게 특출난 점은 없었다.
주도로가 너무 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졌던건지.. 아까미 덕후 입장에선 아쉽아쉽
방어...
요즘 방어는 갠적으로 스시보단 회로 먹는게... ㅠㅠ 아주 기름이 잘 돌면 모를까, 내가 예전에 맛보고 황홀해했던 그 방어초밥은 요즘 어디서 먹어야할지 감도 안 온다. 먹고싶다. 맛있는 겨울 방어뱃살 스시가..
학꽁치 이렇게 맛있게 손질해서 주시면 그저 감사합니다.
생강이나 유자처럼 네타의 고유한 맛을 변질시키는 부가재료가 없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원래는 유자나 생강등을 잘 쓰셨는데. 쫀쫀하고 풍부한 학꽁치의 등푸른 맛이라 근본적이면서도 좋은 맛이라고 평가를 하고 싶다.
메까도로가 흔하지 않게도 초밥으로 나왔는데.. 갠적으로 꼬들한 황새치 뱃살은 스시보단 사시미로 한 점 소금에 찍어먹는게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네타도 너무 기가 쎄면 내가 별로거든...^^
고등어. 그냥 좋다. 사랑한다.
이게 고등어지 셰끼들아!!라고 온 몸으로 외치고 있는 듯한 궁극의 향기로움과 보들한 텍스쳐
우니를 올린 이까
우니 양 좀 보소.. 오늘 우리의 스몰토크가 셰프님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우니를 무슨 산처럼 쌓아주셨다.
이까는 쫀득하고 우니는 달달하고 난리가 났다.
우니를 싫어하는 친구 옆에 앉은 혜택으로 나는 우니가 따블이여
존존대존의 공식을 성립하는 눅진한 아보카도 대게살 초밥.
존맛 + 존맛 = 대존맛
옆에 앉은 친구가 이거 애호박 아냐?라는 올해 최고의 망언을 하셨다.
단새우는 농도가 살짝 아쉬운게 3마리면 딱 완벽했을 아쉬움이 남네.
키조개 관자.
관자스시는 언제나 뭐 쏘쏘.. 그닥 선호하는 종류가 아니라.
생전복 초밥.
생전복도 관자처럼 그닥 즐기는건 아닌데 간만에 먹으니 느낌이 새로워서 마음에 들었다. 오독오독하고.. 비린 맛 없이 향긋하고. 생전복은 집에서 초장 찍어먹느니 스시집에 와서 먹는게..
타래소스를 올린 키조개.
표면은 미끄덩하면서도 막상 먹어보면 쫀쫀하고 불쾌하지 않은 식감이 예술이다. 조개 내음이 확 한데로 모여들어 살며시 스며든듯 한..
내가 갠적으로 긴스시에서 제일 좋아하는게 나왔다.
카니미소 군함.
익힌 대게의 내장을 숟가락으로 긁어 먹어도 그리 좋던데.. 그걸 게살이랑 같이 전문가의 손길에 의해 스시로 받아볼 수 있다니 내장 덕후 입장에서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정말..
이 날 전반적으로 스시 상태가 다 좋아서 이꾸라도 좋았다.
평소처럼 톡톡 터지는게 아니라 부드럽게 뭉그러졌던 연어의 알들.
홍고추와 실파 등을 썰어넣은 타코 와사비.
참기름향도 살짝 느껴지는게 이건 일식이라기보단 한국적이란 느낌이 강한 메뉴다. 쫄깃쫄깃 문어살들.
뭔가 좀 충격적으로 변화한 긴스시의 장어 굽기.
이전에는 자그마하게 쥐어주셨다면 이번은 굉장히 넓고 큰 장어가..
전보다 소스를 줄이고 장어 자체의 간을 올렸다. 부드러움은 강화하고 폭신한 두툼함으로 다가오는.. 정말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버리는 푹신한 장어였지. 이번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든다.
교꾸는 맛이 없었다.
온도는 차가운게 딱인데 단맛이 없어도 너무 없다. 흠..
스시는 대략 20여개로 끝이 나고..
끝을 알리며 나온 식사는 짬뽕이었다.
생각보다 불향이 강해 마치 중식을 먹는 듯 했던. 전복과 오징어가 들어가서 시원하다.
류산슬을 그대로 짬뽕으로 옮긴 듯한 향.. 얼큰하며 간도 쎄서 면발이 싱겁지 않아 좋았다.
긴스시 이번 겨울 후식은 단감과 딸기인가보다.
나이 처먹고 과일을 잘 안 먹게 되는데 식사 후 받아보는 약간의 과일은 생각보다 더 즐겁다.
이렇게 든든하게 점심식사를 마쳤는데 다행히도 나에게 들려온 불친절함은 겪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불친절하단 평이 거짓이 될 수는 없다.
이촌동 스시상가가 반드시 개선을 해야할 부분이고, 계속 그런식이라면 언젠가 나 또한 경험하게 될 문제일터니 조금 더 세심하게 손님의 컨디션을 체크해주셨으면 한다. 어떤 분은 말하시길 옆 팀 손님들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양의 스시를 받았다고...ㅠㅠ
뭐 새손님은 필요없고 오던 사람만 오라 이런 영업방식이라도.. 불친절하면 손님 다 떨어져 나가요.
왕처럼 모시라는게 아니라 편안하게 식사 자리를 만들어주는게 스시야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스시 먹고 카페 C에 와서 1인1케이크 시전중..
산뜻한 우유케이크와 촉촉한 시트가 매력적인 딸기쇼트케이크.
뒤에 있는건 진한 얼그레이 케이크.
블루베리 쉬폰과 초콜릿 쉬폰.
어릴적 파리바게트에서 먹어본, 가운데 구멍이 뚫린 쉬폰케이크의 여리여리한 맛을 잊을 수 없어 지금도 케이크하면 쉬폰을 제일 먼저 선호한다. 블루베리로 쉬폰 시트를 만들다니 넘나 좋은 것..
요즘은 타르트보다 케이크가 편하다.
저녁에 라이언 만나기로 해서 남는 3시간 동안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도 조지고... 친구 에어비앤비 예약도 도와주고..
이촌동 참 좋아하는게 카페에 1시간만 앉아있어보면 10마리의 강아지와 10개의 유모차는 충분히 볼 수 있다.
그만큼 편하게 살기 좋은 동네라는 뜻이겠지. 맛난거 많고 분위기 유하고 좋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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