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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소격동/삼청동] 특별한 연말과 연초에는 특별한 이태리 음식으로, 전일찬 셰프의 이태리재(Italy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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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벌어서 그대로 서울 식당에 헌납하는 기분. 여행도 당분간 갈 일 없고.

겨울이 와서 그런지 괜히 들뜬다. 내 어린 나이가 조금 덜 어린 나이가 될테고, 모든 건물 내부가 후끈후끈 난방으로 덥혀지며 심심찮게 캐롤과 재즈가 들려오는 겨울. 그런 의미에서 요즘 악착같이 서울에서 핫한 플레이스들을 찾아다니는 중.

최근 미슐랭 가이드가 서울에 상륙했다. 난 줄여서 서울랭 가이드라고 부르는데, 빕 그루망에 이태리재가 올라왔다고.. 물론 난 미슐랭 불신하지만. 내로라 하는 외국에서 가봐도 글쎄. 로비 의혹도 있고 특히나 한식부문 선정 보니 기가 차서 ㅋ 북막골이 미슐랭? 우리 엄마 곰탕도 그럼 미쉐린 가이드에 올라갈 듯.

그래도 이탈리안이라는 종목에서는 서양 기준을 한 번 믿어봄직도 하고 주변에서 꽤 호평도 들려오는터라 얼른 날 잡고 이태리재에 방문했다. 일요일 저녁 6시쯤 방문했는데 아마도 풀부킹. 이태리재는 장안의 뜨거운 인기쟁이라 예약 경쟁이 다소 치열한 곳으로, 내가 알기론 크리스마스 예약 오픈한 주에 풀부킹이 되었다고...

아무튼 이 곳은 압구정 몽고네(연희동에도 있는 그 곳)에 계셨던 것으로 아는 전일찬 셰프님이 지휘하시는 이탈리안 식당으로 성게알 파스타 등 몽고네와 다소 겹치는 듯한 느낌이 있다. 요즘 장안에서 쟁쟁한 파스타집은 사실 한 뿌리인 경우가 많은듯. 쿠촐로, 마렘마, 볼피노도 그런 경우고. 

​광화문을 지나 소격동으로 오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고 인디영화와도 같았다. 푸르고 짙게 깔리는 저녁 하늘 아래로 가로등만 조용히 빛다던 한옥길을 잠시 걸어서 도착한 이태리재는 한옥 기와를 표방한 다소 한국식 오리엔탈 느낌으로 인테리어가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디너 시작이 딱 오후 6시라 예약한 사람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소 번잡시러워.. 그리고 추워..ㅠㅠ 정시에 도착합시다.

​안내를 받고 들어간 자리는 동그란 원형테이블로 구석에 위치한 자리 가게가 작은 편이라 한 팀이라도 소란스러운 팀이 있다면 전체 식사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지만 조용히 식사할 장소보단 다소 활기찬 퀴진 분위기가 맞는 장소니 크게 신경 쓰이진 않는 편.

깔끔한 식기와 나름 갖추어진 촛불이 보이네. 재즈 음악이 겨울답게 흐르는 내부.

​일행이 도착하기 전 대충 내 맘대로 메뉴를 골라서 주문했다.

식전주인 아페롤 스프리츠 2잔과 이태리재의 시그니쳐메뉴인 성게알 어란파스타와 트러플 크림 뇨끼를 우선 주문했는데, 이 날 수급된 성게 물량이 다 떨어져 어란을 2배로 넣어주신다고ㅠㅠ 그래도 뭐 성게라는 재료에 초점 맞췄다면 진즉 이자카야를 갔을터이니 큰 불만 없이 오케이했다. 그날그날 오늘의 메뉴는 문어샐러드라든지.. 따로 한두가지씩 존재하는 편. 겨울이라 방어 카르파치오도 곧 나오지 않을까 싶다.

가격이 싸진 않지만 1만원대 파스타로 만족을 느끼는 경우보단 그 이상 금액대에서 즐거움을 찾는게 쉬우니. 맛있는거 먹으러 왔을 때 가격 따지는 것처럼 짜증나는게 없다. 서민이지만 먹을땐 먹어야.. 힘내서.. 돈 벌러가지..

​영롱한 루비 빛깔의 아페롤 스프리츠의 등장.

아페롤이라는 오렌지레드빛의 이태리 리큐르에 스푸만테(이탈리안 스파클링)를 혼합한 식전주인데, 꼭 프로세코 품종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히 빛깔이 먹음직하고 향긋한 향이 뿅뿅 올라오는게 식전주를 먹을거면 일반적인 백포도주보단 이런걸 먹어야지.. 이런 생각.

​체감 도수는 10도 안팎. 올리브와 레몬을 넣어 비주얼도, 풍미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식사에 곁들일때는 생선보단 육류와 잘 받는 편이다. 아페롤이란 리큐어를 맛 본적이 없을뿐더러, 어떤 스푸만테를 사용한지 몰라서 원인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향이 붉은 과일의 느낌이 강하고, 쪼임도 살짝 있는 편이라 그냥 로제와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로제와인처럼 어느 쪽에도 나쁘지 않게 마리아주가 되지만 그 중 특히 육류와는 잘 받는 와인이 있는 것처럼.

​성게알 어란 파스타의 등장. 플레이트가 꽤 널찍한 편이라 양이 많아보이지만 그닥? 한 명이 다 먹었을때 살짝 배 찰 정도라 이태리재에서 1인1메뉴는 맞지 않다. 최소 2인 3메뉴는 해야 만족스러울 듯. 

위에 올라간 푸른색 채소는 이태리 파슬리로 고수처럼 강한 향을 씹었을 때 확 풍기는 야채다. 주로 플레이팅 디자인 용으로 사용되는데, 씹어보면 뭔가 익숙한 향이 나면서 시트러스향이 가득한게 완.전. 튀는 맛. 먹어보고 너무 익숙한 맛인데 근원지를 모르겠어서 셰프님께 여쭤봤다 이거 모냐고!! 

​꼬릿하고 비릿하고 구수한 어란 향이 공기를 통해 위로 피어오르는 순간 사정 없이 빠르게 섞어버리고.. 스파게티면이 얇고 단단하고 꼬들한게 제격이다. 집에서 먹을때는 퉁퉁히 퍼진 면이 집밥스럽고, 외식할때는 이렇게 세련된 느낌으로 날카롭게 조리한 파스타가 끌린다.

​포크로 대강 둘둘 말아올려 한 입 먹어보니 예상대로 꼬수운 어란향이 하늘하늘 피어오르며 오일코팅이 짭짤하게 된 파스타면 주위를 맴돈다. 이빨을 대면 탁!하며 끊어지는 예민한 남자같은 매력이 있어..

파스타는 간이 강해야한다. 아윽 짜! 싶을 정도의 면수로 빠르게 볶아낸 파스타가 진짜 사람 미치게 하는 파스타지.. 가끔 짠 음식이 싫을 때도 있지만 파스타집에서만큼은 제대로 짭짤한 파스타를 즐기고 싶다. 

아무튼 성게가 있다면 확실히 바다 출신 재료로 만들었다는 아이덴티티가 살아났겠지만, 갠적으로는 어란만 사용해서 내놓은 이 메뉴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았던 것 같은게 굳이 이거 먹으러 재방문하고 싶지는? 근데 궁금할 맛. 궁금한 맛도 아니고 궁금할 맛이 뭐냐면 안 먹으면 밤마다 궁금해서 이불 끌어안을 맛.

​다음은 트러플향을 첨가한 크림을 묻힌 뇨끼다. 빵가루 같은 파마산가루가 눈에 띄는데 치즈포비아에게 썩 내키는 메뉴는 아니었으나 트러플과 크림, 그리고 약소한 치즈(블루치즈면 안됨) 정도면 먹어줄 수 있을 정도니 냉정한 평가를 위해 시켜보았다. 파마산과 그뤼에르 치즈를 쓰신건지 크림 속에 살짝 늘어지는 치즈가 종종 보인다.

부드럽게 구워진 뇨끼를 집어 먹어보니 짧은 순간 코 끝을 훅 치고 가는 송로의 향이 느껴진다. 생송로의 짙은 향은 아닌게 아마도 트러플 오일이나 소금으로 향을 잡으신 것 같은. 생트러플 썼다면 2만원이 아니었겠지 ㅋ

뇨끼보다는 감자스럽고 감자보단 뇨끼스럽다. 단단하진 않지만 부드러운 감자라고 하기엔 밀가루의 느낌이 없지 않아 있음으로. 크림은 진하지만 꾸덕하기보단 질감이 묽어서 부담스럽지 않다. 블랙트러플향은 아주 옅에 베이스에 깔려서 가끔 운이 좋으면 뇨끼를 한 입 먹었을때 찰나의 순간으로 강렬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 주인공은 이 팬에 구운 보들보들한 뇨끼와 크림이라고 볼 수 있다. 

​Not my cup of tea.. 치즈 지분이 아~주 적은 편은 아니라. 그래도 이태리재가 치즈를 과하게 쓰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추후 2차 방문때 먹은 아란치니를 생각해보면?

하지만 평소 크림류를 즐겨 먹는 사람이라면 꽤 만족할만한 정성이 들어간 접시. 하나 남기고 다 먹었는데 팬에 구운 향이 꽤 강렬해서 그거 좀 마음에 들었고, 트러플향이 진하지 않아 오히려 더 나았고. 저항감 없이 살살 녹아주는게 꽤 성질 착한 뇨끼요리다.

​2명이서 2개의 파스타를 먹고 부족해서 주문한 송아지 립 스테이크. 7만원 정도...

굽기 컨디션은 따로 요청하면 들어주신다. 우린 블루레어로 할까 고민하다가 립스테이크를 블루레어로 하긴 좀 미친 것 같아서 레어로 주문함. 홀그레인 머스터드와 레몬을 함께 올려주시는데 플레이팅이 너무 이탈리아 시골틱한거 아닐까?

한 점 한 점 일렬로 늘어세우고 갈빗대는 옆에 꽂아두듯 세워놓고, 접시를 좀 풍부한 색이나 디자인으로 선정했다면 고급스럽게 연출이 되었을 것 같은데 너무 막 담아주시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도 눈으로 먹는 요리 별로 중요하지 않고 맛이 중요하니 

​그릴에 구우셨는지 아주.. 청순하고.. 어린 소년같은 깨끗한 맛.  육질이 쫀득하며 정직하게 담백하고, 레몬이나 통겨자에서 오는 산미가 강해서 그렇지 간은 좀 약하다. 그래서 소금은 따로 청해 먹었다. 

개인적으로는 아메리칸 스타일로 뜨겁게 달군 팬에 버터를 녹여 사정없이 앞 뒤로 지져낸 더티한 스타일의 스테이크를 선호하는 편이라 손이 많이 가지는 않았다. 이태리재의 다른 메뉴와 전반적인 느낌을 맞추다보니 탄생한 송아지 스테이크 같은데, 이렇게 자연적인 맛을 좋아한다면 시켜볼법한. 난 차라리 올드나이브스에서 등심스테이크 600그램 먹겠어..

​투박할 정도로 큼직한 갈빗대를 하나 집어왔는데

​해체하려고 보니 굉장히 고어물같은 연출이 나와서 당황..

마치 연쇄살인마가 갓 잡아온 인간의 정강이뼈를 뜯어먹는 듯한.. 어머.. 

​갈빗대는 뜯다가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원두커피를 주문했다.

구수하면서 마일드한게 식사의 마무리로 너무 완벽해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다 맛있어도 커피가 구리면 마치 화장실에서 볼일 다 보고 나왔는데 세면대에 비누가 없는 느낌

​생각보다 날 사로잡은 맛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두번 보고 싶은 곳이라 이 카운터석에 와서 앉아보리라 결심하며 이태리재를 나섰다. 마치 얼굴 평범한 남자를 우연히 만났는데 이상하게 한 번 더 보고 싶은 로맨스 영화 주인공의 마음처럼?

둘이서 14만원 잼..ㅋㅋ 

​곡성 메인 포스터와 같은 출구. 황정민은 없고 여성분들이 서계셨다.

이렇게 이태리재 첫 방문을 마친뒤, 나는 얼마뒤에 바로 2번째 방문을 했다. 

​2번째 방문은 홀로, 카운터 석으로, 디너 말고 런치로. 오픈키친 개이득~ 

​머스캣향이 살짝 올라오는 소아베 클라시코 한 잔 글라스로 주문하고. 2014년 빈티지다.
와인을 대부분 글라스 단위로도 판매한다는게 큰 강점. 리스트 폭이 좁은 대신 다 글라스 단위로 제공하니 뭐.. 와인 다이닝바가 아니니 굳이 와인에 주력하진 않는 것 같다.

​궁금해서 주문한 아란치니. 샤프란과 치즈가 들어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서 혹시 치즈 빼고도 요리 가능하냐고 여쭤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No.. 어쩔 수 없지만 요즘 꽤나 용감하게 치즈가 있어도 대부분 시도는 해보는 편이라 우선 1개 주문했다. 개당 5천원인가?

​바삭하고 얇고 단단하게 튀겨진 동그란 아란치니를 나이프로 살짝 갈라보자 사프란에 물들은 촉촉한 밥알과 큼직한 애호박이 드러났다. 조금 떼어서 먹어보니 마치 전복 내장과도 같이 진한 감칠맛이 돌면서 치즈향은 의외로 하나도 없는게 다행이다 싶었던. 애호박 조각이 큰 편이라 자신감 있게 입 안에서 느껴지는 편인데 무심하게 씹힐 때마다 단맛이 살짝 배어나오면서 특유의 호박향을 사방에 퍼트려주는게 재밌더라.

아쉬운건 호박 때문에 쫀득하게 버무려진 밥알만의 맛을 느끼기 힘들었다. 작아서 따로 빼놓고 먹기도 뭐하고 한입에 먹으라고 한입크기로 만들어준걸테니까. 무튼 리조또를 튀겼더니 안 먹을 수가 없는 맛난 메뉴.

​그 다음으로는 루꼴라와 하몽을 얹은 치킨스테이크를 주문했다.

긴 플레이트에 손바닥만한 닭고기와 루꼴라, 하몽을 차곡차곡 쌓아 레몬오일드레싱을 뿌려냈다.

​바삭하게 버터에 구워진 닭과 신선하고 쌉싸름하며 담백한 루꼴라, 훈연향이 매력적인 하몽의 조화는 그럭저럭 잘 어울리는 편이다. 아주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은 아니었던게 우선 닭과 하몽의 간이 강한 편인데 거기에 산미 강한 레몬 오일마저 뿌려내었으니 에피타이저 개념으로 먹기엔 조금 과한 느낌이.

버터향과 불에 구운 느낌이 오롯하게 배어버린 닭껍질과 촉촉한 속살은 좋다. 자칫 이래저래 튈 수 있는 맛을 루꼴라가 단단히 잡아주는 편. 레몬오일이 아쉽다. 레몬즙을 차라리 굽기 전의 닭고기에 뿌리고 구워내어 드레싱 없이 플레이팅하는 편이 나에게 더 좋았을 것 같다. 이미 하몽과 치킨스테이크에 소금기가 빠방하니까. 그리고 루꼴라가 소금 타는 음식도 아니고.

​그 다음엔 봉골레 파스타. 화이트와인과 조개를 듬뿍 사용하고 역시 애호박과 이탈리안 파슬리, 그리고 감칠맛 보조 토마토까지.

뜨겁게 김이 올라오는 파스타를 바로 두 손으로 전달받아 먹어보았더니 신가하게도 카레향을 살짝 맡을 수 있었다. 갓 끓여낸 따끈따끈한 카레에서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사람마다 맡는 냄새가 다르다는 사실이 이럴 때 참 신기해.

애호박과 토마토로 조개의 존재를 살짝 지워내어 은은하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전형적인 봉골레보다는 살짝 약한 듯. 봉골레를 모티브로 이태리재만의 스타일로 변형시킨 오일 파스타라고 하고 싶다. 뜨끈뜨끈한 파스타면을 한 껏 포크에 올려 후루룩 빨아들이니 몸도 마음도 후끈해지는 기분.

마지막으로 내가 좋게 보던 그 원두커피로 혼자만의 점심식사를 마무리했다.

서비스 역시 친절한 편이지만 아쉽게도 메뉴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은 따로 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오픈 키친 특성상 직원이 꾸지람을 듣는 광경도 목격할 수 있고, 아주 고급스럽고 팬시한 분위기는 연출이 어렵지만 그 덕분에 편안하고 안락한 작은 공간에서 여러모로 셰프들의 생각이 녹아든 이탈리안 요리를 먹어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바에 앉았을 때 보이는 힘찬 주방광경도 그렇고 예약만 쉬우면 자주 가고 싶다. 우선 여기가 전화를 잘 안 받는다. 들어보니 전화벨소리가 너무 약하쟈나 ㅜㅜ 한 달 안으로 또 갈듯. 명성에 거품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