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적한 일요일, 여유롭게 영화로써 문화시민의 소양을 어느정도 갖추려고 노력을 해본 날이었다.
백화점에 입점한 영화관에 간 김에 지하 식품관 와인코너에 들려 가볍게 마실만한 멀롯이 있나 구경을 좀 했는데 갑자기 디아블로의 멀롯이 먹고 싶어졌다. 가격도 늘 만원 초반대라.. 신대륙 멀롯의 풍부한 베리향을 맛 보고 싶어 냉큼 구입하고 집까지 털렁털렁 들고 와서, 침대에서 휴식을 좀 취한 뒤 일단 오픈부터 했다.
이 악마가 나온다는 와이너리 출신 와인은 언제나 익숙하다. 라벨 디자인부터 느낌까지 아무래도 세계에서 1초에 1병씩 소비되는 와인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아무튼 2015년 빈티지로 한 병 도전
작년에 레드와인잔을 두세개 구입했는데 다 깨먹고 마지막 남은 하나ㅠㅠ 이래서 내가 리델 블랙타이나 잘토 글래스가 갖고 싶어도 못사는 것! 설거지하다가 깨트리고 바닥에 떨어트려서 깨트리고 잔 닦다가 힘조절 못해서 부러뜨리고 노답
까시에로 델 디아블로의 까베르네 쇼비뇽이 짙은 탄닌과 아로마로 좀 정색스럽고 정석스러웠다면 이 멀롯은 오픈하는 순간부터 달콤한 베리향이 잔 주변을 가득 맴돈다. 목구멍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과육이 메를로의 부드러움을 더 메를로스럽게 치장해주는 느낌? 추운 겨울날 정열적인 스페인에서 보내는 한 후끈한 바에서의 시간이 눈 앞에 그려진다. 칠레 출신이지만 그냥 그렇다고..
아로마가 굉장히 부드럽고 섬세했다면, 조금 시간이 지나 흘러나온 부케는 구조감이 좀 더 짙어지고 거칠어진 느낌이 있다. 30분 이상 오픈해놓으니 산미가 가득 올라와 처음에 맛 본 그 여리여리하고 스무스하게 목구멍 뒤에 깔리는 느낌에서 입안을 마구 휘젓는 느낌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생각보다 당도가 강해서 얼마전 라이언에게 선물 받은 트러플 초콜릿을 몇개 꺼내서 당도를 좀 죽였다.
적당히 달콤한 와인은 사실 마시기 시작할쯤엔 편안하지만, 계속 맛을 느끼다보면 한계가 오는 듯한 느낌. 미세하게 스위트하거나 아예 슈퍼 드라이한 와인이 천천히, 느긋히 마시기 좋은 것 같다. 마치 아이폰 로즈골드가 처음엔 이쁘지만 오래 쓰기엔 블랙이 나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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