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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일상

[고찰]미식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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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코가 얼어붙을 정도의 추운 공기를 맞으며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에 좋아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떠올렸다. 내가 '세계 최고 스테이크'라고 부르는 그 곳의 한우 채끝 스테이크를 맛보려면 겪어야하는 상암동까지의 힘든 여정탓에 잠시 주춤한 식욕은 따뜻한 사무실에 도착하자 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부족한 시간과 체력에 절망하던 와중에도 그래도 떠올리면 황홀해지는 식당 두어군데가 내가 사는 도시에 있다는 점에 위안을 받았다. 음식에 대한 갈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초등학생 때는 집 냉동고에 있는 치킨너겟을, 중학생 때는 노원역 지하에 있는 허름한 라볶이집을, 고등학생 때는 다음 날 기숙사 조식으로 나올 사과 주스 한 팩을 그리워하며 시간을 보냈다. 성인이 된 후로는 경제적 자유권을 얻은 덕에 조금 더 그럴싸해보이는 음식을 탐하지만 결국 음식을 원한다라는 본질은 같은 셈이다. 피난길에도 맛있는 음식을 찾은 동서양 역사 속의 왕들만이 우월한 것은 아니다. 경제가 안정됨과 동시에 미식문화가 서울의 근본을 점점 차지하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빈부격차에 대한 인지와 박탈감을 선사해주기도 한다. 미식가들은 나파밸리나 보르도의 3대 와이너리의 와인을 마시고 근사한 밥에 아낌없이 금전을 쏟아붓는다. 더 나아가 자연주의를 외치며 Farm to Table, Natural Wine 등의 진보라고 여겨지는 식사문화룰 지향하곤한다. 이제는 노포 투어를 아무리 해도 가끔씩 한남동에서 캐비어 한 스푼이나 스시조의 주도로 스시 한 점을 먹지 않으면 '미식가 반열'로 보이지 않는 세상에 이르렀다. 하이틴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법한 Qeen Bee 스쿼드가 미식 블로거들 사이에 자리잡았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 서울 네임드 밥블로거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식당만을 뺑뺑이 돌 뿐이다. 만약 상계동 구석에 정말 맛있고 근사한 작은 양식당이 생기더라도 셰프가 유명 레스토랑 출신이거나 대장급 블로거가 후기를 쓰지 않은 이상 맛으로 상류 사회에 데뷔하긴 어려울 것이다. 유명인사들이 모르는 식당에는 몇몇 민간인들이 찾아올 것이고 엽기떡볶이랑 미스터피자 좋아하는 사람들이 SNS에 쓴 간증은 발에 채이는 낙엽 정도로만 취급이 된다. 사실 밥에 대한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놈이 그 놈일뿐이니 정작 미식의 격과 급을 가르는 것은 음식을 좋아하는 본인들일뿐이다. 더 멋지게 먹어보자!를 두 명이 외친다면 그 멋지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될 수 있다. 동네 선술집에서 어설픈 가지구이와 살얼음이 낀 청하 한 병에 멋진 밤을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말린 꽃이 꽂아진 식탁에 앉아 접시마다 나이프를 바꿔가며 먹는 사람도 있다. 좋은 사진을 찍지 않아도, 외식에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트렌디한 셰프의 맛집을 가지 않아도 미식가라고 주장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로 간 것일까? 미식에 있어서 도대체 격은 무엇이란 말이냐. 내가 식사 자리에서 행복을 얻고 셰프가 원하는 가치를 궁금해한다면 그게 바로 더 나은 식생활을 지향하는 '미식'가다. 저 사람이 무슨 와인을 어디서 구해서 마셨고 이 셰프는 어느 식당 출신인지 전혀 몰라도 좋다. 좋은 식사를 즐길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고 나의 마음을 여는 최소한의 맛은 결국 내 입에 맞는 불어터진 스파게티와 내가 좋아하는 향의 싸구려 와인, 따뜻하고 어두운 조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유명 와인 블로거들이 강추한 리슬링을 먹어봤는데 고양이 오줌맛만 나서 버렸다. 남자들이 와인을 모르는 여자들이나 좋아할법한 뻔한 향과 심심한 기포라고 단정지어놓은 포도주에서 나는 첫사랑을 만났다. 음식과 음악만큼 평가에 있어 개인의 취향과 객관적인 진리를 분리하기 어려운 것이 없다. 밥이란 정답이 있는 수학문제가 아니다. 식당과 요리사, 먹는 사람 사이의 급과 격을 은연중에 나누기 전에 본인만의 확고한 행복을 찾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