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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일상

[일상] 발목 복숭아뼈 골절이 되다(발단과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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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짜리 추석 연휴가 흘러가던 금요일 밤
이태원에서 와인과 식사를 함께 하고 적당히 취해서 (만취아님) 친구랑 "담배고?"를 외치며 일상생활에서는 피우지 않는 담배를 사러 근처 편의점에 들어갔다.

친구가 피는 아프리카 한갑과 함께 문을 나서는 순간
빗길에 젖은 비닐봉다리를 밟았고
그대로 나는 시원하게 이태원 골목길에 자빠짐

내가 원래 수치를 잘 느껴서 일단 넘어지면 무조건 용수철처럼 빠르게 일어나는 편인데 그 날은 어마어마한 고통에 5초간 일어나지도 못했다. 개쪽팔림보다 심한 고통..

겨우 혼자 일어나서 빈병 박스를 짚고 친구한테 너 먼저 가라고 졸라게 쿨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때만해도 사태의 심각성은 없었고 일시적 고통이라 생각해서 부축 따위 받을 생각도 안했었지.

택시를 부르고 대로로 걸어가는데
왼발을 딛을 수가 없어서 또 한번 1차 미끄러짐과 같은 대참사를 연출했고.... 절룩거리며 고통스럽게 걸어가는데 어떤 한국인 여성분께서 괜찮냐고 물어봐주셨다. 쏘스윗ㅠㅠ 근데 남에게 도움 못 청하는 병이 있는 나는 애써 고맙다고 했지만.....

절대 홀로 걸을 수가 없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떤 외국인 케밥집 아저씨가 나오셔서 나를 택시까지 부축해주셨다. 30대 후반 백인 외국인의 무뜬금 호의를 처음에 나는 당연하게 의심했지만 진짜 그냥 친절하신 분이었음. 의심 미안합니다.

택시를 어찌어찌 타고 집 앞에 도착해서
고통을 잊으려고 줄담배를 오지게 폈다.


집에 와서 양 발목을 찍어보니 확실히 왼쪽 발목이 퉁퉁 부었었다. 고통이 심하긴했지만 인대 접질렀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하며 하늘이 전용 쿠션계단 훔쳐와서 발목을 올렸다. 붓기 빼려고...

그리고 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일 어떤 와인을 어떤 잔에 담아 마실지 궁리하면서

그 다음 날 일어나서 밥도 해먹고...
일단 응급처치는 필요할 것 같아서 응급실 가려는데
도저히 왼발을 쓸 수 없어서 샤워도 네발로 기어가서 앉아서 함.

이때쯤 아 골절각이라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대학병원 응급실을 가서 엑스레이와 씨티를 찍고
복숭아뼈 아작났다는 진단을 받아 우선 반깁스를 했다.
연휴기 때문에 외래 교수 진료도 수일 뒤였고... 주말이 지나고 진료 및 수술하기로 결정.

"복숭아뼈 골절이네요"

이 대사를 듣고 머리속에 스쳐지나간 수많은 생각

1. 출근 좆됐다 승진은 정말 글렀군
2. 얼마나 쉬어야하지? 출근해야하는데여ㅜㅜ
3. 곧 있을 제 생일을 위한 수많은 샴페인 약속들은...? 뼈가 부러졌는데 내가 일상에서 누리던 그 많은 와인들은 이제 정녕 안녕인가? 내 알콜중독은?

어쨌든 백병원 응급실에 계시던 귀여우신 남의사분 행복하세요. 남자는 꽃!

​처음 깁스 감았을 때는 너무 아팠는데
집에서 며칠 지내다보니 통증엔 적응이 되었지만 정말 불편했다. 부러진건 복사뼈인데

​마침 오스트리아에서 직구한 내 소중한 리델 그린타이 글라스가 도착해서 더 눈물이 남. 아니 이렇게 예쁜 잔이 왔는데 금주라거여? 제가요?

미친척 하고 와인 계속 마실까했지만 구글에 깁스하고 술마시면 엌케 되는지 검색해보고 접었다.

​파닭 먹으면서 한쪽 발은 컴터 본체에 올려놓고 스카이림도 하고 심즈도 하고 오버워치도 했다.

그렇게 연휴가 끝나기를 며칠 기다렸는데.... 붓기도 안 빠졌고 연휴 끝나서 환자도 많고 수술이 좀 미루어졌다.

​그렇게 나는 골절 발생 후 7일이 지나서 골절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고 수술 전날 입원을 함. 여기 남원장선생님이 자꾸 여자애 발목에 흉지면 엌카냐고 남자애면 수술을 해주겠는데 통깁스로 몇달 버티면 안되냐 이딴 소리 해대서 개짜증나며 걍 수술해달라고 함.

발목에 흉터 있는 여자가 머 어땨서요 시바 10cm를 찢든 20cm를 찢든 알 바 아님; 여자의 신체를 그따구로 '잘 보존해야할 존재'로 치부하지 마세요.

웃긴건 여자 몸을 흠 하나 나지 말아야할 꽃으로 알면서 몸 상한다고 출산 거부하는 여자들보고 이기적인 년, 김치년 운운하는 한국 사회.

​병원밥 개샹노맛,,
수술 전날 오후 5시에 식사를 하고 그 후로 대략 40시간 가량 물과 음식 섭취를 하지 않았다. 링거를 투입하기 때문에 허기와 갈증은 썩 느껴지지 않았다.

​링거 진짜 아픔.
영화랑 드라마보면 환자들이 링거 팍 빼버리고 뛰쳐나가던데 말도 안된다 바늘이 엄청나게 아프다.

링거 위치도 바꾸고 항생제 테스트도 하고 주사 오지게 맞았는데 하나같이 아팠음.

암튼....
오늘 오후에 수술을 받았다.
병원직원들끼리 실수가 잦아서 내 수술도 밀리고 나는 수술실에서 혼내는 직원과 혼나는 직원들도 봐야했긔 (어리둥절)

척추에 주사를 놓고 하반신 마취를 하는데
내가 죽어도 맨정신으로는 못하겠으니 제발 수면마취 해달라 간청을 해서 프로포폴 투약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프로포폴에 쓸데없이 강한 사람,,,
수술 중반에 눈떠서 어리둥절하고 있었음.
눈을 떠보니 사람들이 내 발목에 나사를 박고 있어따
또 하반신 마취를 하니 상반신이 미친듯이 추웠다.
온 몸이 정말 수술대에 부딪혀 시끄러운 소리를 낼 정도로 떨었다. 그렇게 버티다가 짐짝 들리듯 휠체어에 실려 다시 침대행.


마취가 풀리면 고통이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어 이정도 아픔은 머 시공간에 내 자아를 맡기면 참을 수 있다 이 정도임. 그리고 한시간쯤 지나면 무통주사 투여의 필요성을 느끼고 무통 버튼을 누르게 된다.

무통 버튼도 한계가 있어서
어느 순간 발목이 불타오르는 작열통 비스무리한 고통에 휩싸인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고 ^^7

새벽 세시가 지나가는 이 순간마저 잠을 못 자는 중.

하.. 진짜 두 발로 걷고 싶다.
사실 육체적 아픔보단 마음에 병이 들어가는 중이다.
목발 짚고 출근할 2주 뒤의 내 모습과 예전처럼 걸을 수 없는 내 발목, 사랑하는 와인을 마실 수 없는 내 가여운 알콜중독 정신 등등.

또 큰 문제는 씻기가 힘들다.
내 몸에 대해 좀 지나친 결벽적 기준을 갖고 있는 나라서 머리를 2일 이상 안 감는 것은 꿈도 못 꾸는데... 참.. 발 하나 못 쓰는게 내 세상에 이렇게 막대한 붕괴를 가져올 줄 누가 알았을까.

언젠가 다시 두 발로 멀쩡히 살아갈 날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