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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reviews

[삼각지] 육전식당을 뛰어넘는 삼겹살과 항정살 맛집, 고가길 구공탄(9공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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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지에는 나도 몰랐던 보석같은 오래된 맛집이 많다. 용산구 주민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한쪽에는 이태원과 녹사평, 해방촌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외국음식점이 몰려있고 삼각지에는 정다운 느낌의 진성 맛집이 몰려있으니..

이태원만 해도 내 마음에 드는 작은 가게들이 많으니까. 가끔 산보삼아 삼각지역에 내려 이태원~ 녹사평까지 걸어가는데 그렇게 마음이 행복할 수가 없다. 용산은 나에게 그런 동네다.

구공탄이라는 가게를 발견한건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별로 특별하진 않지만. 그저 블로그를 좀 구경하다가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삼겹살 사진이 있어 아, 여긴 가야한다는 생각에 방문.

​정말 고가길 대로변에 위치한 엄청나게 작은 가게.
친구와 후배와 함께 왔는데 셋 다 진성 페미니스트라 명자나 섹시스트 없이 진하고 재밌는 대화를 한창 떠들어댔지

​조그마한 실내와 야외에는 두세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다. 매연이고 뭐고 초여름에 실외석에 앉아 삼겹살 굽는 맛도 쏠쏠하지.

대략 1시간을 금요일 퇴근 후 기다려서 착석할 수 있었다. 커플, 가족, 외국인을 막론하고 다들 정처없이 기다린 끝에 먹는 이 곳 9공탄;;;; 다 좋은데 웨이팅이 하자다.

​겨우겨우 앉은 야외 테이블. 연탄이 들어왔다.
의자는 불편한 편, 테이블은 작고. 편하게 먹을 장소는 아니고 오롯하게 맛만 바라보고 찾아오는 가게인 것 같다. 사장님 가게 확장 좀... 삼겹살 가격도 싼 가격 아닌데 빚이 많으신게 아니면 가게에 투자 좀 해주세요 흑흑 ㅠㅠ

​180그램에 만이삼천원 하는 가격의 삼겹살과 항정살을 각각 2인분씩 주문하고 이슬 한 잔씩 기울이다보니 슬슬 밑 반찬이 나온다.
흔한 고기집의 양파 장아찌, 쌈장, 풋고추, 마늘 등등

​파절이도 나오는데 기름기가 가득하고 두꺼운 고기를 먹을 때 필수품이라고 볼 수 있음. 그래도 우리 엄마가 무쳐주는 파절이가 짜장인디....

​​항정살 2인분이 우선 나와서 항정살부터 굽기 시작했다. 숭덩 숭덩 잘려진 분홍빛 항정살 두께가 옳다. 하긴 구공탄을 오게 된 계기도 바로 이 두께에 반해서 온게 맞으니...

고기들은 전부 초벌 구이로 나온다. 그래서 서빙이 꽤 늦음 ㅠ 아무튼 이 더위에 밖에서 초벌구이하는 알바생들 애도요

​앞 뒤로 얼추 지져준 다음 가위로 사각형 모양으로 잘랐다. 항정살은 이렇게 깍두기 모양처럼 잘라놔야 씹을 때 기름이 톡톡 터지면서 먹는 맛이 남.

​꽤나 두꺼워서 오래오래 익히기.
여기가 마음에 드는 다른 이유는 바로 이 불판! 기름이 새어나가지 않고 그대로 촉촉하게 판 위를 코팅해주어 비쩍 마른 고기를 먹을 일이 없다.
엉터리 생고기 이런데 불판 진짜 별로.

​잘 구워진 항정살을 먹으면 이게 돼지고기의 오롯한 육질이라는 느낌보단 단단한 라드(돼지기름)과 육즙이 뭉친 결정체를 씹는 느낌을 받는다.
이빨을 살짝만 갖다대어도 톡!하고 터지는 듯한 느낌과 사르르 입 안에 차오르는 고급스러운 기름짐이 매력이라 삼겹살 집에서 빼먹으면 섭하지.

​항정살을 한창 조지고 있을 때쯤 큼지막한 삼겹살 두 덩이가 초벌구이를 끝내고 세팅기 되었다.

​항정살이 한 차례 지나간 불판에 삼겹살을 올리고

​잘라봤더니... 이런 장관이....
연분홍빛 고운 빛깔이 포토샵 스포이드툴로 색상 추출해서 크림블러셔로 만들어도 좋을 색깔이다. 어마어마한 두께에 겉은 대강 익었어도 속살은 여전히 청순하고 아름답다.

​이미 달아오른 불판 위에서 금세 노릇노릇 익어가는 삼겹살을 가만히 지켜보자니 미칠 지경ㅋㅋ 셋이서 겨우 3-400그램만 먹어놓은 상태니 감질만 난 상태였을뿐이고... 이렇게 먹는 부분에 텀이 생기면 영 탐탁지가 않다.

뭐.. 삼겹살은 딱 횟수를 정해놓고 뒤집어야 맛있다고는 하는데 걍 대충 구워도 난 맛만 좋더라ㅎ

​초여름밤 야외에서 불판에 고기를 한가득 올려놓고 술과 함께 쌈장 찍어먹는 낭만이란. 거기에 고기 육질까지 훌륭하다면 일주일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 다소 번잡하고 불편한 그런 허름한 가게지만 고기맛이 좋은데 뭔들.. 편하게 두툼한 고기를 먹고 싶다면 신당 화돈가나 신설동 육전식당을 가면 되고. 고가길에 자리 잡고 앉아 항정살과 삼겹살을 잔뜩 구워 먹고 싶은 날에는 이 곳으로 오면 되고.

​삼겹살 기름을 한껏 품고 있는 불판 위에 김치를 올리면 빠르게 치이익하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간다.

적당히 익은 배추김치를 삼겹살과 구워먹으면 그만큼 맛있는 조미료가 또 어딨겠으며.. 소금에 고기 살짝 찍은 뒤에 바싹 익은 김치 이파리부분을 겹쳐 한 입에 넣으면 크으 고기 사먹는 맛에 돈을 벌지용

​삼각지 구공탄만의 특별한 메뉴는 바로 김치볶음밥이다. 1인분에 4천원이라는 다소 어이가 없는 가격을 자랑하지만.. 단순한 고깃집 후식용 잡(?) 볶음밥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에 과감히 2인분을 주문.

입자 고운 고춧가루와 고추장 살짝 섞은 듯한 새빨간 빛깔의 김치볶음밥이 자태를 드러냈다. 가장 환상적인 부분은 위에 올라간 반숙 계란후라이;; 노른자를 젓가락으로 톡 깨서 주변 밥알에 사르르 스며들게 한 뒤, 쫀득하게 밥알에 들러붙는 노른자를 타겟으로 크게 볶음밥 한 숟갈 떠서 먹으면 고슬고슬한 밥알과 매콤달콤한 김볶의 장점이 한번에 모였다가 흩어진다.

불을 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달아올라 지글거리는 불판 위에 볶음밥을 넓게 펼쳐서 잠시 눌러붙게 한뒤, 다함께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먹었댔지. 종종 올라오는 느끼함을 자그마한 신김치 조각들이 아주 꽉꽉 눌러준다.

엄청나게 특별한! 기절할 정도로 맛있는! 볶음밥은 아니지만 고기집에서 이렇게 매력돋고 정겨운 김치볶음밥을 판다는게 넘나 좋더라.


삼각지는 앞으로도 종종 갈 것 같다.

주워 듣기로는 이 곳에 내가 아직 깨지 못한 맛집 도장들이 많다는 제보를 쭉쭉 받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