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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일상

[음식] 피자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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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적부터 패스트푸드 3대장은 자고로 햄버거와 치킨, 그리고 피자라고 정해져왔다. 굳이 내 자의에 의한 정의라기보단 우르르 몰려다니며 갖은 생일파티를 햄버거 치킨 피자와 함께 해버린 나와 우리 모두의 추억에 기인하여. 나는 항상 '초등학생이 먹기엔 너무 건강에 나쁜' 것을을 바래왔고, 엄마 몰래 아빠랑 시켜 먹는 중국음식이나 학원 선생님 혹은 반장 엄마가 사주는 불고기버거 등에 환호하던 기억을 아직도 갖고 있다.
그 중에서 다채로운 맛과 토마토의 감칠맛을 고스란히 내어주는 피자의 경우, 단번에 내 마음 속 최강자로 떠올랐다. 쉽게 물리고 비슷한 맛을 내는 치킨이나 먹기 싫은 체다치즈나 양상추를 골라내기 귀찮은 햄버거와 피자는 꽤나 달랐다. 맛도 달랐고 가격도 달랐다.
아주아주 어릴 적에는 동네의 피자헛 매장에서 -그때는 마치 아웃백 시늉을 했었던, 먹은 콤비네이션이나 불고기피자가 최고였다. 내 기억이 온전히 시작된 이래로 3-4년 정도 지났을까. 치즈바이트나 고구마무스 등의 프리미엄 옵션이 우후죽순 피자가게를 휩쓸면서, 부모님들의 지갑 또한 당연히 닫히게 되었다. 그때는 통신사 할인이 지금처럼 혜자롭지 않은 시기, 우리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피자스쿨의 5천원짜리 고구마피자나 피자에땅의 완쁠완피자를 먹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피자 한 판에 3-4만원은 그 당시 어린이들에게 당당히 요구할 수 없었던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한 상황은 중학생이 되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피자스쿨의 가격은 부어치킨의 가격과 함께 올랐고, 생일날 조심스레 엄마에게 미스터피자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고 싶다고 부탁했다. 한명당 무려 '1만원' 이상씩 해당되는 라지 피자에 샐러드바라니, 쏘는 중딩은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씨푸드파티인지 뭔지 하는 해산물피자의 풍부함과 크랩샐러드의 짙은 마요네즈에 혼을 뺏겨 한시간은 넘게 매장에 앉아서 밥을 먹었을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가끔 선생님들이 존나 가끔 피자를 사주셨고 우리는 한달 용돈에서 고시촌 투어비를 제한 금액 속에서 피자스쿨에 투자를 하고 다녔다. 육천원으로 오른 고구마피자를 2인1판은 거뜬히 해치우며 그렇게 과제로 찌든 주말을 함께 보냈다. 파닭과 피자만이 우리를 살찌우리라 믿었던 그 시절. 아마 피자에 돈을 쓰기보단 녹두거리 초입의 쎌빠를 주구장창 갔을테며 싸구려삼겹살이 피자헤븐의 커다란 피자보다 매력적이었던 고등학생의 돼지런했던 나날들. 그렇게 졸업을 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니 지하철역 바로 앞에 존재한 미스터피자를 떼놓을 수 없었다. 어색하게 첫 만남을 시작한 직장 선배, 상사, 동료들보다는 10년을 함께한 미스터피자가 퍽이나 반가웠다. 쉬림프골드는 중딩 시절이나 직딩 시절이나 변함없더라. 고구마가 잔뜩 들어있고 겉면이 치즈와 함께 살짝 타오른 가장자리를 다 식어버리게 방치한 뒤 식사가 끝날 무렵 사무실로 향하기 전에 한번에 꾸역꾸역 먹었다. 그게 나에게는 오후의 재시작이었다. 기름진 몸을 방배동 언덕 위로 데굴데굴 굴리면서 투덜거림과 우울함을 동반한 채로 식사 후 재출근을 재개했다. 가끔 먹는 도미노피자의 포테이토피자에는 이미 영혼의 절반을 기꺼이 허락했다. 아, 그 마요네즈.
지금 늦은 밤 침대에 누워있는 스물두살 김하은은 방금도 피자 생각을 했다. 최근에 치즈를 싸구려로 바꾼 도미노피자라든지, 올레 할인폭이 늘어난 미스터피자라든지. 아니면 한국에서 발을 빼버린 피자헛도 어릴적 향수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쁜 패만 뒤집게 되는 인생일지라도 어릴적 먹던 피자를 계속 먹게 된다면 전부 나쁜 패는 아니리라 믿는다. 그리고 아주 먼 훗날,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을.. 그 때에는 엄마랑 아빠랑 엄마아들이랑 한 집에 있었을 때 아빠가 오븐으로 구웠던 근본없는 소세지 치킨너겟 피자 사진을 하염없이 보며 그래 좋았지 좋았었지라고, 생각할 것 같다.

번외로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피자.
나에겐 데이트용 피자로 치면 선택지가 없다.